무척 다행히도 우리학교에는 시네마트랩이라는 작은 영화관이 있어 다른 영화관에는 걸리기 힘든 독립영화를 상영해주곤 한다. 듣건대 메가박스에서 상영을 시작한 뒤 얼마 되지 않아 관객이 얼마 되지 않아 혹은 뻘짓을 좋아하는 수꼴단체들의 항의에 의해 영화가 내려졌다고 한다.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하던 중 최근 이곳에서 천안함 프로젝트를 상영해주고 있다고 해서 갔다 왔다.
나는 그동안 천안함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 내게 있어서 천안함 문제는 북한이 또 한번 서해에서 난리를 피운 사건일 뿐이고, 그 문제에 대해서 논란이 있건 말건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북한이 쐈다 좌초했다 아니면 제3의 결론이건, 이것 혹은 저것인 일이고 현재 내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지금은 북한 잠수함이 쏜 어뢰에 의해 피격되었다고 한다. 의문이 있건 음모론이 있건 관심이 없다. 나중에, 사실로 밝혀지면 그 때 가서 알려달라 그게 아니면 나는 아직 정부의 설명 쪽에 서 있겠다.
이 영화의 상영을 막으려는 행동은 뻘짓 중의 뻘짓이다. 영화는 천안함 피격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거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을 제시한다거나 하지 않는다. 다만 기존에 정부에서 제시한 설명 중 이해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 중 일부는 타당하나 일부는 무리한 것 같다. 이 영화가 만약 정부에서 제시한 설명을 부정하는 것이었다면, 기존에 알려진 "북한 잠수함 어뢰설"에서 제시한 모든, 아니면 대부분의 증거를 살펴야 (최소한 검토는) 해야 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것들을 모두 다루지 않고 그 중에서 일부만 건드렸다. 이것은 영화가 지향하는 바, 즉 정부의 설명은 거짓이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은 이것이다! 는 식으로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에서 좌초설의 시나리오를 소개해주기는 한다) 정부의 설명 속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지적한다는 것, 정부의 설명과 국민의 이해 사이에 소통을 추구한다는 합리적인 의문 제기라는 선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영화가 천안함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거나 반정부적인 혹은 종북적인 영화라는 비난은 이해되지 않는다.
모든 문제는 양자의 측면에서 모두 검토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인터넷에서 정부쪽의 설명에 기반한 다른 자료를 확인해 본 결과, 이 영화에서 제기한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거나, 이미 논박되었거나, (불리한 설명을) 다루지 않았거나 아니면 아직 모두 받아들일 수 있을 설명에 도달하지 않았거나 한 것들인 것 같다. 이를테면 좌초설을 논박하는, 어뢰설을 주장하는 설명의 일부는 아직 내가 이해할 수 없고 따라서 영화에서 제기하는 의문은 아직 남아 있어야 할 것 같다. 반대로 프로펠러? 스크류? 의 구멍에 왜 조가비가 들어가 있느냐 하는 것과 같은 의문은 논박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물기둥이라던가 포말이라던가 하는 것들은 영화에서 다루지 않았는데 이것은 좌초설에는 불리하고 어뢰설을 뒷받침하는 것들이다. 마지막으로 제3의 잠수함 문제에 관한 것은 정부측에서 무시를 하는건지 아니면 아직 음모론 수준에 불과한 것인지 확인해 볼 수가 없다 이것은 양자 모두 아직은 접어두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처음부터 깔고 들어가는 것처럼 국민이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면 정부에서는 국민이 만족할만한 설명을 해야 한다. 그것이 정부의 의무이고 의문을 던지는 것은 정당한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 영화가 가치 없는 영화다 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해경의 보고를 받고도 출동하지 않았는지 왜 다음날이 되어서야 수색을 시작하였는지란 의문, 영화의 후반부에 나온 문제 중 하나, 에 대해서. 내 생각에 이건 믿을 수 없을정도로 무능한 정부기관이라는 사실로 봐야지 그걸 갖고 정부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정부가 진실을 감추고 있다는 식으로 연결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정부 관료기구는 어느 나라를 보건 대개 무능하고 굼뜨고 비탄력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관료기구의 성격상 모든 실행은 표준처리절차를 준수해야 하며 필요한 절차를 거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합리적인 댓가이다. 이를테면 빠르고 적극적인 대응 보다는 안전하고 안정적인 업무 수행을 선호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기구도 민간처럼 기업처럼 빠르고 유연하게 바뀌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정부가 기업처럼 변신한다고 해보자. 50년 이상 유지되는 기업이 몇이나 되나? 정부가, 공무원이, 만약 기업처럼 시장처럼 움직인다면 빠르고 유연하고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있겠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 나라는 수차례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정부는 수천만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의무가 있고 그것이 안전하다고 확실할 때에만 움직일 수 있다. 정부라면, 공무원이라면, (기업처럼) 100이라는 성과를 달성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10의 성과를 내더라도 -10의 위험을 피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따라서 수색작업에서의 무능함은 이해될 수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 중 하나는 천안함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것 그리고 이 영화의 상영을 반대하는 사람들, (영화 속에 나온 것처럼) 천안함 장병들의 명예훼손으로 고발한 것과 같은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인가였다. 천안함 문제에 의문을 던지는 것과 광주민주화운동에 의문을 던지는 것은 같은 문제인가? 천안함 문제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과 5.16 군사쿠데타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갖는 것은 같은 문제인가? 내 생각에 있어 전자의 태도는 옳고 후자의 태도는 옳지 못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양자 사이에서 매끈한 구분선은 찾지 못하였다.
마지막 뱀발로 덧붙일 한가지는 천안함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혐오스러운 정치인들의 역겨운 작태이다. 당연하게도 이것은 국방상의 문제이며 외교상의 문제이다. 하지만 이것을 국내문제로 전환하려 한다거나 또는 천안함 문제에 의문을 던지는 것에 "어떻게든 북한의 행동이 아닌 것으로 밝히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는 식의 대응은 한숨이 나오다 못해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다. 그들은 호전적인 구호를 내세우고 애국을 자처하지만 내가 보기에 전혀 아니올시다. 그리고 천안함 장병들이나 유족들을 자신들의 장막 아래에 두고 그들의 문제를 정치인 자신들이 변호하는 것처럼 떠들어대는데 난 이것도 너무나 짜증난다. 정치인들은 전혀 그리고, 절대로 그들을 대변할 수 없다. 그들은 자기가 장병 옆에 서서 싸우는 것처럼 떠들어대지만 정작 장병들에 대한 실질적인 처우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를테면 해군 초계함의 낙후된 소나 같은 문제를 보라. 정말 중요하다고 할 국방의 문제를 당연 최우선 해결과제에 놓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들이 전쟁을 불사하더라도 강력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소리높일 자격이 있나? 겉으로는 국방을 내세우면서 뒤로는 토목사업에 치중하고 겉으로는 전쟁을 주장하지만 알고보면 군대도 제대로 다녀오지 않은 놈들이다. 그깟 정치적 수사로 입을 놀리는 자, 오히려 이런 자들이야말로 천안함 전사 장병들을 모욕하고 그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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