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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Film

설국열차(Snowpiercer, 2013)

by Mr. Trollope 2013. 9. 15.






평소에 봉준호감독을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 이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다. 살인의 추억이 좋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내 인생의 영화다 뭐라 할 정도는 아니었고, 그 뒤에 나온 영화들 이를테면 괴물과 같은 영화는 내가 보기에 좀 불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정말 좋았다. 겨울철에 개봉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17년 동안이나 달릴 수 있는 열차가 존재하느냐 따위의 질문은 건너뛰자. 




혹자는 이 영화의 계급혁명적 상징성이 불편하다고 말한다. 내게는 의문이다. 이 영화에서 머리칸의 승객들이 꼬리칸의 승객을 착취해서 생활한다는 어떠한 암시라도 들어 있던가? 이 영화에서 머리칸의 승객들이 누리는 행복이 꼬리칸의 승객들의 희생을 전제한다는 어떠한 단서라도 나타난 적이 있었나? 없었다. 이 둘은 단지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안에 공존하고 있을 뿐이고, 꼬리칸의 승객들이 반란을 일으켜 머리칸으로 전진하려고 한다는 설정 속에 그런 계급적인 요소는 없다. 이 영화에서 머리칸의 승객들이 원하는 것은 꼬리칸의 노동이나 희생이 아니라 안정이고 침묵 뿐이다. 그리고 그것 만이 길리엄과 윌포드(애드 해리스)가 공유하는 하나의 목표이다. 그렇기 때문에 길리엄은 폭동을 진정시키기 위해 자신의 살을 내어주었고, 윌포드는 꼬리칸을 위해 (뭘 갈아넣었건) 단백질 블록을 제공하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그들의 이러한 해석이 마뜩찮다. 머리칸이 꼬리칸에게 음식을 주는 것은 꼬리칸이 머리칸의 아니꼬운 모습을 참고 지내는 것은 어쨌든 그들은 공존하고 공생하고 있기 때문에서 나오는 것이다. 다른게 아니라. 나는 이 영화를 아래것들이 윗사람을 뒤집어 엎는 그런 내용으로 보기 보다는 다른 쪽으로 보고 싶다. (그리고 이건 다른 사람들이 이미 지적했던 내용이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계급적인 내용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시작한다는 점이 정말 재밌있는 부분이다. 이 영화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메이슨(틸다 스윈튼)이 꼬리칸을 상대로 연설을 하는 장면이다. "나는 애초부터 머리칸 너희들은 애초부터 꼬리칸 자기 위치를 알고 자기 위치를 지켜라." 시네타운 나인틴에서는 뭘 새삼스럽게 이런 장면을 집어넣었냐고 깐다. 어차피 다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장면이라고 했다. 하지만 머리칸과 꼬리칸은 계급의 상하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냥 열차가 처음 운행할 때 구입한 좌석에 따라 양쪽으로 나뉘어졌던 것 뿐이다. 단지 쾌적한 환경을 누릴 수 있는 머리칸의 좌석을 구입한 사람과 그렇지 못하고 입석을 구입한 사람들일 뿐 아니던가? 하지만 연설을 하는 메이슨도, 그걸 듣고 있는 꼬리칸의 사람들도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영화를 까는 팟캐스트 진행자들도 그걸 계급으로 보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두 집단 사이에는 어떠한 착취/희생 관계도 없다. 하지만 열차가 출발한 뒤 17년이 지나자 사람들은 이걸 계급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메이슨은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하였으며, 꼬리칸의 사람들은 머리칸에서 사람을 보내 어린 아이를 끌고 가는데도 '무슨 권리로 끌고가냐'는 말을 하지 않는다. 17년을 달린 열차처럼 영화가 시작한지 몇 분이 지나자 사람들이 이걸 계급이라고 본 것처럼. 




이건 상징이라는 것이 결국엔 그렇게 작용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공유하는 몇가지 요소를 매개로 해서 정의하지 않은 관련된 사실까지 함께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것 뿐이다. 예카테리나 다리를 건널 때 새해 카운트를 하는 도부수들과 그 앞에서 머뭇거리면서 '나이 먹기 싫어'하고 투덜거리는 꼬리칸 사람들도, 그들이 인정하지는 않지만 어느새 열차 안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공유하게 되어버린 그런 생각 말이다.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도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반란을 일으키려는 그의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이지 윗것들을 몰아내고 모두가 쌀밥에 고깃국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뭔가 그런 프롤레타리아 혁명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냥 자신들을 이런 비인간적인 상황에 처하도록 내버려둔 머리칸의 사람들에게 그 죄를 묻겠다는 것 뿐이다. 자기 아들을 찾겠다던 아줌마와 커티스를 지도자로 세우고 열차를 장악하겠다던 에드가(제이미 벨)를 제외하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나오지 않지만. 소수이기는 하지만 누구는 이런 소리도 했다. 그들이 왜 열차의 앞칸으로 가려고 하는지, 동기가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았다고. 그들도 이 영화가 계급혁명의 문제가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마뜩찮다고 해서 이 영화 속에서 체제 전복이라던가 그런 요소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감독이 뿌린 내용도 있고. 내 말은, 영화 외부에서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왜 계급을 생각하느냔 말이다. 전세계의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수많은 나라의 상황이 그러하듯, 우리 사회 속에서 일방의 국민이 타방의 국민을 착취하는 그런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제 3세계를 착취하겠지. 아니면 비정규직을 착취하겠지 하지만 그건 이 영화와 관계없다) 머리칸과 꼬리칸은 평등하다. 그냥 다를 뿐이다. 그들 사이에는 복종과 배려와 같은 상호 의무가 없다. 하지만 이 둘은 서로에게 의존해야 한다. 머리칸은 단백질블록을 꼬리칸에게 제공하는데 그것은 자신들의 착취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그래야 자기들이 살 수 있기 때문이란 생각에서 나온 행동일 뿐이다. 예전에 서울역 노숙자 문제로 논쟁하던 중, 내 친구는 이런 소리를 했다. "우리가 왜 그들까지 챙겨줘야 하냐" 물론 의무는 없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와 함께 사는 한, 같은 사회에 속한다면 우리는 의무 수준은 아니더라도 그들을 배려해야 한다. 아니면 그냥 굶주리게 버려둬도 된다. 그러면 범죄(반란)를 일으키겠지. 잡아다가 쳐 넣으면 되지 않나? 물론 그래도 된다. 그렇게 하는 나라가 있다. 미국이라고. 전세계에서 단위인구당 가장 많은 재소자 수를 가진 나라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모습이 아니다. 


사회의 앞뒤를 나누고 위아래를 나누는게 익숙한 시대가 되어갈까? 이제 우리에게도 배려가 아닌 의무가 필요할까? 내 친구처럼 왜 그런 사람들을 배려해야 돼? 하고 묻는게 아니라 폭동을 막기 위한 상위계급의 의무가 요구되는 시대가 나타나게 될까. 단백질 블럭처럼. 아직 우리는 배려와 의무 사이의 어중간한 가운데에 있는 것 같다. 만약 우리가 서로 다른 계급에 속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정말 계급으로 나뉘어진 과거에 속하게 된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의무를 갖게 될 것이다. 지주가 농노에게 갖는 의무처럼, 노비가 주인에게 바치는 의무처럼. 꼬리칸은 머리칸에게 머리칸은 꼬리칸에게. 그리고 의무와 복종의 관계가 무너질 때 그 때 이 영화는 계급혁명을 담은 영화가 되겠지. 












나는 혁명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것은 반인륜적인 폭력에 유아적인 자아도취에 불과하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메이슨이나 윌포드 그리고 길리엄과 같이 현상 유지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커티스처럼 앞칸으로 가봤자 결국에는 윌포드를 대체하고 새로운 독재자를 탄생시키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남궁민수처럼 열차를 부수고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내가 그걸 알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면 어쩌라고? 어쩌겠나. 나는 그냥 뒤에서 궁시렁대는 법만 배운 시민에 불과하다. 열차를 부수고 바깥으로 나가서 새로운 시도를 해 볼 것인가 아니면 그냥 이대로 살아갈 수 있는한 살아갈 것인가. 나는 살고 싶은데 어떤 이상한 부녀가 열차를 폭파시키는 바람에 죽게 되었으니 니가 무슨 권리로 이러냐고 묻는다면. 이것이라면 논의해 볼만한 문제고. 열차가 달렸으면 그래도 10만명이 살 수는 있는데 너 때문에 다 죽게 되었다. 열차가 서면 뭐하냐 꼴랑 두명 살아남았고 그것도 북극곰한테 잡아먹히지 않으면 다행이고 추위에서 생존하느냐 마느냐도 알 수 없는 상태 아니냐 라고 말한다면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소리고.  



추가. 혹자는 꼬리칸은 민주당 머리칸은 새누리당이라고 말했다. 그걸 보고 허지웅은 머리칸은 민주당 새누리당은 바깥의 자연재해와 같은 것이다 라고 말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재미있는 비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 보니까 그것은 지나친, 어쩌면 역겨운 비유다. 설마하니 깨시민이라는 생각때문에 한 소리일까 아니면 그냥 재밌을 것 같으니까 즉석에서 지어낸 소리일까. 모르겠다. 내 생각에 비유를 하려면 꼬리칸은 민주당, 머리칸은 새누리당, 추위와 자연재해는 북한 이렇게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근데 이러면 너무 햇볕정책 같은 소리가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