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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Film

변호인(The Attorney, 2013)

by Mr. Trollope 2013. 12. 24.




영화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받았기 때문에 과연 제대로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약간의 우려도 있었다. 또한 영화의 모티브가 된 고인이 유명한 탓에 이런 소재를 가볍게 날려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지난해, 대선을 한달 앞두고 부랴부랴 개봉한 26년이라는 최악의 폭탄이 있었다. 설마하니 그 두번째 폭탄이 터지는 걸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다행히도 그 모든 것은 기우였나 보다. 그럼에도 영화의 시사회 평이 좋았다는 말을 듣고 기대 반, 걱정 반이 있었다. 왜냐하면 영화가 너무 좋은 탓에 영화의 감상이 고인에 대한 추억이란 한 점으로 매몰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최근 대학가를 중심으로 안녕들하십니까 라는 진정한 울림이 있었다. 그런 울림이 호소력을 가진 것은 어느 누구 하나에게 집중되는 것을 거부하고 친필로써 개인의 목소리로서 울려 퍼지기를 희망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 역시 그런 울림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고인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을 때운다면 그건 역사의 시계를 5년 전으로 되돌리는 것이고 결국 우리는 아무런 발전이 없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고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고인이 몸을 담았던 집단, "변호인"에 관한 이야기이고 나는 이 영화를 그렇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이란 것이 우리에게는 멀고 윗분들에게는 가까운 것이고, 법은 우리를 지켜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높으신 분들이 아랫것들을 다스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소리를 지겹게 들으면서 자랐다. 사실 동양법의 전통이란 것이 그러했기 때문이며, 지난 수십년간 근대화와 민주화의 과정이 같은 결론으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양법의 전통에 그런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역시 법을 무기로 싸워온 역사가 존재하고 또 그런 기억을 갖고 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간혹 그렇게 말하곤 한다. 현실이 곧 진실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해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현실이 비록 좌절스러울지 몰라도, 결국 법은 힘없는 자를 보호하고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하는 점에 있다. 이 영화는 현실이 잘못된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가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수색영장이 아닌 체포영장만을 들고도 타인의 건조물에 침입하는 공권력을 보면서 어이구 잘한다 공권력이라면 저래야지 하고 박수를 치는 모 종편방송의 그릇된 행태를 보고도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건 이상한 일이다. 마땅히 그러한 법집행이 제대로 된 근거와 해석 위에 치러졌는지 법집행은 엄격하고 제한된 형식을 갖고 행사되어야 한다며 그러한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 비록 아직 우리에게 낯설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사법에 분노를 느끼고 피고에게 동정심을 느꼈다면 최소한 우리가 바르게 배운 것이다 이제 배운 것을 실천할 때이다. 



혹자는 말한다. 법의 현실이 그렇다.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렇다. 불행은 우리가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억지로 밀어부치려고 하는 것에서 찾아오는 것이며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이란 것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행복이 시작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행복은, 높은 목표를 성취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지 결코, 성취할 수 있는 목표로 낮추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한 친구는 언젠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제점은 누구나 똑같이 과도한 기대치를 충족하려고 하는 것에서 나온다. 모두가 똑같이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더 잘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고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이야기해야 한다. 영화에서도 나오듯이.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보며 살으라"는 말에 머리를 조아리고 고개숙이고 물러서서는 안된다. 맞다. 현실은 냉혹한 것이다. 바위에 부딪쳐 부서진다고 해서 너를 위해 눈물을 흘려주지 않는다. 너희를 위해 대신 맞아주지 않는다. 바위를 향해 계란을 던지려는 것은 만용이다. 하지만. "바위는 부서지지 않아도 죽은 것이고 계란은 부서질 지언정 그것은 산 것이다." 과연 우리가 후대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무엇인가. 죽은 듯이 숨죽이고 있으라는 것인지 아니면 살아서 생동하라는 것인지.



또한 나는 이 영화가 법조인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바꿔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현실에 대한 법조인들의 태도를 바꿔 놓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부산 시민들의 시각을 바꿔놓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먼저 앞서 밝혔듯이 법은 우리의 것이지 윗분들의 것이 아니다. 법은 통치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통치자를 제약하기 위한 것임을 깨닫고 우리가 먼저 나서서 그것을 배워야 한다. 두번째는 법조인의 시각이다. 법을 배우는 것이 입신양명과 출세의 수단으로 전락하였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것은 유사 이래로 늘 그래왔으니까. 하지만 그 속에서도 법의 정신을 지키고 법의 양심에 기대 싸워온 법조인도 늘 존재했다. 그것이 비록 성공적이지는 못했지만, 꾸준히 그리고 계속해서 법의 보호를 구현해 왔다. 오늘날까지 우리가 이렇게 평화를 지키며 살아있는 것은, 나는, 혹자가 무던히 주장하는 것처럼 "공권력이 지켜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양심있는 법조인들의 노력 때문이라고 믿는다. 마지막은 부산의 것이다. 부산이, 비록 지금은 무척 보수적인 동네이기는 하지만 한때는 진보를 위한 가장 큰 목소리가 있었던 곳이다. 나는 부산의 힘이 "침묵하는 다수"에 있지 않다는 것을 믿는다. 이 영화는 부산의 학림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부산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그들에게 자랑스러운 전통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부산에는 부마항쟁의 기억이 있고 또 찬란한 6.10 운동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부산의 변호사들 중 99명이 출석한 그 때처럼. 한때는 부산이 그 자랑스러운 주인공이었다는 것을 떠올리게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