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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Film

인 더 하우스 (Dans la maison, In the House, 2012)

by Mr. Trollope 2014. 8. 12.

한 때 하숙을 한 적이 있는데 2006년 쯤인데 연대 서문 근처였고 한 1년을 산 것 같다. 아주머니의 음식도 맛이 있었고 같이 사는 하숙생들도 친절했다. 그곳에서 재미난 일화는 많지만, 지금 이 얘기를 하려는 이유는 그 곳 하숙집의 주인 아저씨가 정말 대단한 영화광이었기 때문이다. 집의 거실 3면에는 DVD와 CD 꽂이가 가득히 메우고 있었는데 그곳에 사는 동안 전부 살펴보지도 못했을 정도다. 정말 굉장했다. 상당한 영화팬인 점을 늘상 자랑스러워하는 편이지만 이 아저씨에게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왓챠>에서 그 동안 감상한 영화를 찾아 평점을 단 적이 있다. 내 기록은 다른 친구들을 훌쩍 뛰어넘는 숫자였고, 나는 잠시 우쭐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래도 이 아저씨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그정도로 굉장했다. 그랬던 이 아저씨는 매일같이 영화를 봤는데 내가 하숙집에서 저녁을 먹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갈 때면 늘 대형 스크린을 내려놓고 영화를 보고 계셨다. 내가 감히 아저씨의 삶을 상상해 본다면, 정확히 3등분할 수 있을 것 같다: 잠자는 시간, 일하는 시간, 영화보는 시간. 영화를 볼 때는 다른 경우에라면 볼 수 없을 그런 눈이, 어둠 속에서 반짝이며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여기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요즘 아이들은 정말 형편없는 문학적 소양을 갖고 있다고 한탄하는 제르망은 한 때 작가가 되기를 꿈꾸었던 고등학교(?) 문학 교사다. '주말에 있었던 일을 묘사하라'는 숙제에서 어느날 번뜩이는 재능을 가진 소년, 클로드의 글을 발견한다. 클로드가 쓴 내용은 새로 알게 된 친구 라파의 집을 방문했던 일(In the House)을 묘사한 것이다. 제르망은 예절과 교양으로 냉소와 조롱을 감추어 놓은 빼어난 글솜씨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클로드의 글이 "다음에 계속"으로 끝난다는 것을 본 제르망은 클로드가 계속해서 글을 진행해 나가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제르망은 같은 주제의 숙제를 주문해서 클로드가 계속 글을 써 내려가도록 했고, 심지어는 방과후에 따로 불러 글쓰기를 지도하기 까지 하게 되었다. 완벽한 가정에 속하기를 원하는 클로드의 욕망, 작가와 독자를 오가면서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완성하고자 하는 제르망의 욕망 그리고 그 속에서 확실하게 증명되지는 않지만 클로드가 방문하여 묘사한 글 속에서 드러나는 라파의 집 안에 존재하는 욕망까지. 클로드의 작문 숙제를 중심으로, 사람들의 뒤엉킨 욕망이 서로 밀고 당기면서 영화가 진행된다.




제르망은 클로드의 매혹적인 글 속에서 (중산층 중년의 여성을 갖고 노는 당돌함 뿐만 아니라) 완벽한 가정 속에 함께 하고 싶어하는 그의 갈망을 읽어냈다. 클로드는 새로 사귀게 된 라파의 수학 공부를 도와주면서 그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고 서서히 라파의 아버지, 어머니와 친분을 쌓게 된다. 클로드는 자신이 결코 가질 수 없었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어머니와 아들, 남성과 여성의 연인 관계 등을 라파의 집에서 충족하고 싶어 한다. 클로드의 욕망을 읽어낸 제르망 역시 자신만의 욕망이 있다. 비록 글쓰기의 재능은 없지만 무엇이 훌륭한 글인지, 그걸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잘 아는 사람이다. 한때 작가를 꿈꾸었지만 (책을 하나 출판했다) 자신에게는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포기해야만 했다. 자신의 부인이 뭘 원하는지, 클로드나 라파의 인생이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무심한 인물로, 작품 속에 감추어진 욕망을 읽어내는 데는 기가 막힌 능력을 갖고 있다. 기본적으로 제르망은 다른 이의 작품 속에서 비로소 생기를 얻을 수 있다. 그에게는 자신의 부인이 운영하는 갤러리도 비웃음의 대상이고, 갤러리와 그것을 둘러싼 세계는 형편없는 수사로 가득차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그에겐 무가치했다. 


만약 제르망에게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없었다면? 클로드에게 완벽한 가정을 갖고 싶다는 욕망이 없었다면. 아마 이 이야기는 없었을 것이다. (제르망의 욕망이 없었다면) 문학 교사는 (제르망의 부인이 그랬듯이) 클로드의 글에서 불안함을 감지했을 것이고 (클로드의 욕망이 없었다면) 제르망은 피자와 TV에 대해 쓰여진 또 한편의 글을 받았을 것이다. 여기에서 욕망을 가진 사람만이 타인의 욕망에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세상에는 자신의 인생을 살 때보다 남의 인생 속에 살 때 더욱 빛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있는 법이다. 사실, 지금의 우리 모두가 그렇다. TV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인생은 특별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전혀 특별하지 않다. 미디어는 또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멋진 인생을 즐기세요. 아니. 우리의 인생은 남들과 전혀 다를바 없다. 그것을 무시하기 위해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를 찾는다. 아침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 재벌가 회장님이 싸지른 출생의 비밀을 다루는 드라마가 넘친다다. 이제는 숨이 막힐 지경이다. 우리와 다른 세계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쓰이고 청담동에서의 삶을 다루는 드라마까지 나왔다. 내가 최근에 확인한 정보에 따르면 청담동의 인구는 분명 1천만 명이 아니었단 말이다.  


최근에 읽고 있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처음에 매스 미디어는 우리로 하여금 가상 세계를 현실로 믿게 했다. 그러더니 이제는 현실을 가상으로 여기게 한다. TV 화면이 현실을 많이 보여 주면 보여 줄수록 우리의 일상은 점점 더 영화처럼 되어 간다." 


틀렸다. 우리의 삶은 전혀 영화같지 않다. 


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영화의 마지막은 제르망과 클로드가 나란히 벤치에 앉아서, 클로드가 제르망에게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주면서 끝난다. 제르망은 글을 쓰는 방법은 가르쳐 줄 수 있었지만, 현실의 삶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좌절해야만 했다는 사실을, 제르망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자신의 것이 아닌 비뚤어진 것이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클로드는 제르망이 바라보는 사람들의 현재를 상상하기를 주문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게 많다. "그 속에 들어갈 방법은 많다. 그들은 항상 무언가를 필요로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