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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Film

소사(小史) : 안옥윤(1911? - ?), 영화 <암살>

by Mr. Trollope 2015. 10. 5.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실존'하는 인물은 한 명, 안옥윤 뿐이다.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먼저 말하지만, 여기서 '실존했다'라는 말은, 실제 역사에 등장하는 사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건 영화로 그 인생을 재구성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이 영화에는 191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의 시기를 살아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삶은 모두 불완전하다. 영화 속 이야기가 부족해 역사적 지식의 도움을 받아야 하거나(김구, 김원봉 등), 또는 영화속 이야기만으로 이야기를 살려내기는 부족한 사람들 뿐이다(염석진 등). 하지만 안옥윤은 영화 속 내용만으로도 유일하다. 유일하게 그녀는 이 영화 속에서 살아 있다. 때문에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안옥윤 밖에 없다.   





이름 : 안옥윤(安沃允)


출생 : 1911(추정), 경성


주소 : 경성 아현동 23, 3층(미츠코시 백화점에서 안경을 구입할 때 사용한 주소), 경성 사직동 (강인국의 집)


소속 : 한국 독립군 제3지대 저격수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


계급 : 상등병


가족 : 아버지 강인국, 어머니 안성심, 형제 미츠코

  









1911(추정) 경성에서 강인국과 안성심의 사이에서 출생

1920년 무렵 간도참변으로 어머니를 잃음

1933년 당시 한국독립군 제3지대 소속으로 활동

19331030[1] 상해 미라보 여관 도착, 김원봉과 추상욱, 황덕삼을 만남

1933112[2] 경성 명치정(명동) 아네모오-네 까페 도착

1933 117일 강인국과 카와구치() 암살 시도, 실패

1933119[3] 미츠코-카와구치()의 결혼식에서 카와구치()와 강인국을 사살

1949년 반민특위 재판에서 풀려난 (증거불충분으로 기소 취하) 염석진을 처단

 


아버지 강인국은 조선총독부에서 인정할 정도의 대표적인 친일파로, 평택에 군수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어머니 안성심은 1911년 염석진이 데라우치 총독 암살을 시도할 때 작전을 지원하였다. 그 말을 들은 강인국은 집사를 사주하여 안성심을 살해하도록 했다. 이 때 유모가 안옥윤을 데리고 만주로 도망쳤으며, 그 뒤에 안옥윤은 유모를 어머니로 알고 자랐다. 그녀의 이름을 볼 때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의 성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유모와 어머니의 성이 같을 수도 있지만 유모가 어머니의 이름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보는 편이 훨씬 타당하다. 쌍둥이 형제로 미츠코가 있는데, 어머니 안성심이 살해당한 날 안옥윤과 헤어졌고 1933년에 재회할 때까지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미츠코의 한국어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다. 미츠코는 일본에서 생활하였고 약혼자로 카와구치 대위가 있다. 세상물정 모르는 그녀는 안옥윤이 자신의 쌍둥이 형제임을 알았을 때 안옥윤의 거처로 직접 찾아와 도우려고 하였다. 그곳에서 그녀를 안옥윤으로 오인한 강인국에 의해 살해되었다. 


안옥윤은 중국어와 일본어를 모두 능숙하게 사용할 줄 안다. 만주에서 자라면서 배운 것으로 보인다.



1933년 11월 7일 강인국-카와구치 암살작전에서


간도참변에서 어머니(라고 알고 있었던 유모)를 잃었다. 안옥윤은 그녀가 총에 맞아 죽은 것을 운이 좋았다고 표현하였다. 당시 간도에서 살해당한 다른 수많은 사람들처럼 훨씬 잔인하게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에 한국독립군 제3지대에서 저격수로 활동하였다. 그녀는 독립군으로 활동 도중 상관 살해 혐의로 사형을 언도받았다. 기록상으로는 실수로 상관을 살해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나중에 그녀는 일부러쏜 것이라고 밝혔다. 1933년 경성에서의 카와구치-강인국 암살작전을 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으로 전출되었다. 193311월 9일 경성에서 카와구치 사령관을 직접 사살하였고 강인국의 암살을 지원하였다.



1933년 10월 29일 상해 미라보 여관에서. 추상욱, 황덕삼과 함께


1933년에서 1949년 사이 안옥윤의 소식은 알려진 것이 없다. 안옥윤이 철저하게 미츠코로서의 삶을 살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16년 동안 일제의 앞잡이로 경성에서 계속해서 살았을 염석진 또한 그녀가 미츠코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인국의 재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았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편안한 삶을 보냈을 것 같지는 않다. 자신을 비호해 줄 수 있는 사람(강인국, 카와구치)도 없으며, 또한 아버지가 악질 친일파이기 때문에 다른 조선인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다. 또한 결혼식 당일 장인, 신랑, 아버지가 모두 사망했기 때문에 불운을 부르는 여자라고 해서 일본인들이 그녀를 멀리했을 가능성도 높다. 미츠코의 생활 터전이 있는 일본으로 건너가 은거했을 수도 있지만 안옥윤은 미츠코의 지인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만주나 중국으로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안옥윤임을 아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안옥윤은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1949년에 임시정부 요원인 명우와 함께 작전을 짜고 염석진을 처단하였고 직접 나서기도 하였다. 그런 그녀가 부친이 친일 행각으로 모은 재산을 어디에 썼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1949년 염석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녀의 옷차림은 무척 검소하였다. 이 역시 그녀가 자신을 위해 부친의 재산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또 하나의 증거이다. 또한 김원봉과 김구가 보관하고 있던 후원금 봉투는 결혼식 청첩장으로 사용하였던 그것이며, 게다가 그녀가 임시정부를 후원하지 않고 조용히 은거하며 지냈다고 가정하면 16년 뒤에 임시정부 요원과 함께 염석진 암살 장면에 등장하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사실 안옥윤은 1949년까지 기다리지 않고 그 전에도 위장된 신분을 이용하여 염석진을 살해할 수 있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1945년이 아닌 1949년에 등장한 것도 그녀가 직접 처단하기 보다는 국가의 심판(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신생 대한민국 법정)에 의해 처벌받는 것을 기다렸다. 이는 개인의 원한을 풀고 신분을 드러내는 것 보다 우선시 할만한 다른 일(임시정부를 후원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때문에 염석진이 무죄로 풀려난 16년 뒤에서야 그녀가 정체를 밝히고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피스톨(활동명, 본명은 밝혀지지 않음)로 알려진 살인청부업자와 교감을 가졌으나

끝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지는 못하였다. 


1949년을 기준으로 할 때 안옥윤의 나이는 39세로 이미 적지 않은 나이지만, 결혼을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녀가 결혼을 했다면 임시정부 요원과 접촉하는 것, 암살작전을 실행에 옮기는 것 모두 방해를 받았을 것이다. 명우와 결혼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 역시 추측이다. 당시는 대의라는 것을 위해 개인의 일생을 희생하는 것을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기던 시절이었다. 생면부지인 누군가를 위해 일생을 헌신한다거나 단 한번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끊는다는 이야기가 미담으로 전해지던 시절이다. 임시정부 요원을 숨겨주고 또 그를 돕기 위해 그와 결혼생활을 유지한다는 것도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녀가 명우와 결혼을 했다면 염석진의 눈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1949년 염석진을 처단한 뒤 명우와 안옥윤이 감정을 공유하기 보다는 각자 길을 떠난 것을 보아 두 사람이 이어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1933년 안옥윤은 상해에서 김원봉 등으로부터 암살작전을 명령받았을 때 상하이 피스톨이라는 별명을 가진 살인청부업자와 처음 만났다. 그는 친일파 부친을 처단하기 위해 "살부계"를 조직하였으나 결국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변절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뒤에 그는 안옥윤이 암살목표가 자신의 아버지임을 알고도 작전을 수행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살부계"를 만들었지만 결국 도망친 사람의 하나였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강인국을 눈앞에 두고 안옥윤이 총을 쏘지 못하고 머뭇거릴 때 대신 총을 쏘았다. 두 사람은 미라보 여관에서, 강인국-카와구치 암살 작전에서, 마지막 탈출 과정에서 흥미로운 교감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애정이라고 부를만한 감정이 싹텄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안옥윤이 염석진을 만났을 때 그녀는 커피라든가 연애라든가 하는 등의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에 대한 동경, 평범한 개인으로서의 일생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친 적이 있다. 하지만 194940세가 다 될 때까지 그녀는 계속해서 독립군으로 살았으며, (아마도)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미처 완수하지 못한 임무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녀가 간절히 바랬을 개인 안옥윤으로서의 삶은 끝내 누리지 못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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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원봉은 염석진에게 안옥윤 등을 "10월 마지막날 아침 10" "상해 미라보 여관"으로 데려오라고 하였다. 뒤에 미라보 여관에서 김원봉 등과 만났을 때 안옥윤은 원래 약속시각이 "내일 아침"이라고 언급했다.

[2] 안옥윤 일행이 경성에 도착해서 당일 작전회의를 가졌고 아네모오-네 까페 마담은 5일 뒤인 11 7일에 강인국과 카와구치가 공장을 시찰한다고 말했다.

[3] 11 7일 강인국-카와구치의 암살작전이 실패한 뒤, 안옥윤은 미츠코와 만났다. 그날 미츠코가 사망하자 그녀 대신 강인국의 집에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카와구치와 만났을 때 안옥윤은 "내일 결혼식"이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염석진은 "일본을 위해 헌신한 바를 높이 사" 특무대수사관에 임명되는데 임명식에서 말하길 그 날은 "소화 8년, 11월 8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