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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박정희

by Mr. Trollope 2012. 9. 25.

드디어 오늘, 박근혜가 자신의 아버지 박정희의 잘못을 사과하는, 그를 부정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사과를 했다고 하기에도 골룸하고 그렇지 않다고 하기에도 뭐한 그런 정도의 글이었는데. 지지자를 저버리지도 않으면서도 상대방의 공격을 회피하기 위한 적당한 줄타기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면서 독재자를 부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고 중도 회색지역을 껴안을 수 있는, 그들에게 먹힐 수 있는 선전꺼리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무척 교묘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여기에 대한 두 상반된 입장의 보수 논객의 글 때문이다. 하나는 조갑제 옹의 글이고, 하나는 청년 보수를 자처하는 윤주진이라는 사람의 글이다. 


조갑제의 글에게서는 박정희를 신봉하는 사람이 느꼈을 격한 분노를 담고 있다. 마치 정말 박근혜의 행동이 거대하고 중차대한 행보였다는 듯이, 어찌 보면 박근혜를 홍보하는 것처럼도, 달리 보면 그것의 허위성을 꼬집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다. 이 글에 대해서는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이런 사람의 글을 내가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그럴 깜냥도 없고. 차라리 글 자체에 대한 분석보다는 이 글을 받아들일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더 흥미로울 것이다. 하지만 윤주진이라는 작자의 글은 역겨운 내용 투성이다. 다른 것은 둘째치고, 이 글을 읽은 몇몇 보수성향 네티즌들도 '병맛'임을 인정한 마지막 문단에서, 역사를 운운했으니 이 부분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우리가 왜 역사를 이야기하는가. 왜 구태여 역사를 논하는가. 그것은 지나간 일을 평가하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자세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의 발표문에서 말하는 "과거와 현재가 싸우면 미래를 잃는다." 라는 표현은 심히 웃긴 소리다. 먼저 역사는 스스로를 평가하지 않는다. 이것은 일전에 박근혜 쪽에서 밝힌, "역사의 심판을 기다리자" 라고 말했던 것과 더불어 그들이 형편없는 역사관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역사는 어떠한 누군가가 아니다. 어떠한 집단도 어떠한 세력도 아니고 한 무리의 학자들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우리가 계속해서 평가하고 계속해서 사고한 흔적이 쌓이고 남겨진 것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제 3의 누군가, "역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의 판단이라. 이 얼마나 좋은 말이냐. 하지만 역사는 다양한 해석의 판단을 지향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역사의 실패에 불과하다. 물론 역사는 다양한 판단을 하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그것은 역사의 진실을 찾기 위해서 다각도의 노력을 전개하라는 뜻이다. 역사의 목적은 진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자료가 흩어지면서 진실을 밝히는 것이 힘들게 된다. 자료의 한계는 우리로 하여금 잘못된 판단을 내리도록 유도할 수 있는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판단을 시도해 보라는 이야기이다. 역사의 목적이 진실에 있다는 것을 무시하고, 지금 자료도 공개되고 과거를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역량이 축적되어 그 어느때보다도 진실을 파악하기에 용이한 시점에 와 있다는 것도 모른채, (시간이 흐른 뒤) 역사의 판단을 기다리자 라는 말은, 시간이 흐른 뒤 (기억도 지워지고) (자료도 사라지고) 그래서 개나 소나 떠들 수 있는 그런 시점이 될 때까지 기다려서, 다시 박정희를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자 라는 말에 불과하다. 그것은 역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살해하는 것이다. 


둘째 역사를 평가하는 것은 언제나 늘 현재의 작업이다. 세종을 평가하는 것도, 이순신을 평가하는 것도 늘 현재의 작업이다. 역사는 현재다. "현재의 시각으로 과거를 판단하지 말라." 이 경구는 현재의 가치관으로, 현재의 판단 기준으로 그 시대 인물의 행동과 사고, 인과를 분석하지 말라는 뜻이다. 광해군이 명을 버리고 청을 택한 것은 그가 개혁적인 군주여서가 아니다. 그는 시대의 가치, 맥락과 어긋났고 그렇기 때문에 배척당했다. 이 때 우리가 찬양하는 그런 깨인 정신을 갖고 있어서 광해군이 그렇게 행동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현재의 시각으로 과거를 재단하는 오류이다. 하지만 언제나 우리는 "현재의 시각에서 과거를 판단해야 한다." 왜 우리는 현재의 시각으로 과거를 판단하라고 하는가. 그것은 과거를 보는 것은 미래를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우리가 어떠한 가치를 지향하고 어떠한 가치를 우선하는가. 그것을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우리가 과거를 보는 방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광해군이 재조명되는 것은 '현재' 우리가 그처럼 CEO적인, 기업가적인 러더쉽을 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순신을 욕하고 고니시를 찬양하는 무리들은 21세기의 대한민국에 다양한 종파의 개신교가 만연해 있음을 드러낸다. 과거를 들여다보는 것은 우리가 현재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를 들여다 봄으로써 우리는 현재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로 하여금 박정희를 평가하라고 하는 것이다. 너는 현재 대한민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네가 우선시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너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헌법을 준수할 자세가 되어 있는가. 그것을 보고 싶은 것이다. 단순한 정치적 공세로서가 아니라. 만약 그녀가 헌정 민주주의보다도 다른 무언가를(예를 들어 효심이라던가) 우선시한다면 그것은 그녀가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왜 우리는 박근혜에게 그것을 요구하는가. 혹자는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개새끼"라는 짓꺼리를 찬성하는 쪽이다. 내가 불편한 것은 그런 짓이 사회에 쓸데없이 돌아다니는 것이지 (그것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 그것을 정치인에게 요구하는 것에는 찬성한다. 그는 하나의 인간으로서 그 자리에 나서는 것이 아니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의 대표를 맡기 위해 나선 것이다. 박근혜건, 안철수건, 이정희이건. 누군가가 나온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김정일 개새끼" 해봐 하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은 그 대표가 어떤 인물인지 속속들이 알 필요가, 알 권리가 있다. 그것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그는 대표의 자격이 없다. 박근혜가 박정희의 딸인데, 그녀로 하여금 부친을 부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이러한 까닭에서, 우리가 그에게 그런 요구룰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가진 권리를 최대한 보호해 줄 수 있는 대표인지 아닌지, 그녀를 검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박근혜가 독재자의 딸이라는 이유로 대통령이 될 수 없단 말일까? 아니다. 있다. 박정희를 부정하면 된다. 여기에는 이런 대답으로 마무리 짓고 싶다. "범죄자의 딸이라고 해서 경찰관이 되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아버지가 범죄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딸은 경찰관이 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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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되도록이면 하루에 한편 씩은 글을 쓰려고 한다. 원래는 똥만 싸지르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그래도 글을 가다듬고 그런 다음에 포스팅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짓을 해봤자 나오는 글이 똥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심해서 쓰나 막 질러대나 어차피 똑같은 쓰레기 글이라면 그냥 되는대로 뿌리는 것도 괜찮지 않겠나 싶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