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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정제3

어떻게 해서 원숭환은 영웅이 되었는가 원숭환의 공적은 사실인가. 중화민족의 영웅, 외세의 침략에 거세게 저항했던 원숭환은 수차례의 전투에서 외적을 물리쳤지만, 홍타이지의 계책에 속아 넘어간 숭정제의 어리석음으로 목숨을 잃었다. 결국 명나라는 이 때문에 멸망하게 되었다. 이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하지만 이것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 원숭환이 전공을 세웠다는 2가지 전투를 통해 이를 살펴보자. 1. 누르하치를 죽인 것 – 영원성 전투 누르하치의 죽음에 관한 일설에 따르면 이 때 누르하치가 원숭환 군대의 대포를 맞고 사망하였거나 or 중상을 입고 귀국한 뒤 사망하였다고 한다. 이 주장의 근원은 조선 사람인 이성령(李星齡)의 『春坡堂日月錄』에 기재된, “우리 나라의 역관 한원(韓瑗)이 사신을 따라 중국에 들어갔을 때” 원숭환을 만나, 누르하치가 이.. 2013. 3. 2.
원숭환의 죽음과 그 이유 숭정 2년(1629) 12월, 계요독사이자 병부상서인, 명나라의 최고 군사지휘관인 원숭환(袁崇煥)이 체포되었다. 심문은 수개월간 이어졌다. 마침내 숭정 3년(1630) 8월 16일 숭정제는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원숭환은 황제의 명령이 있음에도 이를 완수하지 못했고, 황제의 신뢰를 믿고 오히려 기만했으며, 적에게 식량을 팔았고, 적의 계략에 속아 장수를 베었으며, 적을 오랫동안 쫓고도 나서서 싸우지 않았고, 원군이 사방에서 모여들었는데 이를 흩어뜨려 적이 (수도의) 성 아래에 이르게 하였다. 또 몰래 라마승을 데리고 성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등의 죄를 저질렀다. .... 이하 생략 (諭以袁崇煥付托不效,專恃欺隱,以市米則資盜,以謀款則斬帥,縱敵長驅,頓兵不戰,援兵四集,盡行遣散,及兵薄城下,又潛攜喇嘛,堅請入城.. 2012. 2. 8.
명말의 환관 위충현 위충현(魏忠賢) (1568-1627) : 본명은 위사(魏四), 본래 肅寧(지금의 하북성 남부) 사람이다. 명말의 유명한 환관으로 천계제의 총애를 받아 동창과 금의위를 장악하고, 문인 집단 내부의 분열을 이용하여 권력을 휘둘렀다. 숭정제가 즉위하자 명을 받고 좌천되었고, 가는 길 위에서 자살했다. 명사(明史) 권305 환관전2에 그의 전이 있다. 그의 악행이야 뭐 너무 유명하니까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고 다만 그가 권력을 잡기 전까지의 일과, 그리고 그 후의 나머지에 대한 내용만 할까 한다. 입궁 그는 일찍이 결혼한 적이 있는데 부인의 성은 풍씨였고 딸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어려서 싸움에 소질이 있어, 왼손과 오른손 모두 능숙하게 활을 쏠 줄 알았다. 집안이 빈궁하였으나 도박을 무척 좋아하여 많은 돈을 .. 2012. 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