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瀟湘館/우즈베키스탄(2007)5

사마르칸트 ④ : 구르 아미르 주변 구르 아미르 영묘 Guri Amir Mausoleum ‘구르’는 타지크어로 ‘무덤’이며, ‘아미르’는 ‘지배자’이므로, 구리 아미르는 ‘지배자의 무덤’이란 뜻이다. 이곳은 원래 티무르가 가장 아끼던 손자인 무함마드 술탄(Muhammad Sultan)이 페르시아 원정에서 전사하자, 1403-1404년에 그를 위해서 지은 무덤이다. 그러나 이후에 원래 샤흐리사브즈에 묻힐 예정이었던 티무르도 이곳에 안치되었으며, 이곳은 일종의 티무르 가의 가족 묘지가 되었다. 원래 이 자리에는 무함마드 술탄이 건립한 신학교와 khanaga가 있었는데 현재는 그 터만 찾아볼 수 있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7개의 묘석이 짙은 흑녹색 연옥으로 된 묘석을 둘러싸고 있다. 이것이 티무르의 묘속으로 울르그 벡이 자신의 할아버지를 위해.. 2015. 2. 21.
사마르칸트 ③ : 비비하님 모스크 주변 비비하님 모스크 Bibi-Khanym Mosque 1398년 델리의 약탈 이후 티무르는 전 이슬람 세계에서 웅장함과 장식에 있어 유례가 없는 모스크를 건설하기로 결심했다. 티무르의 바람을 실현시키기 위해 대부분 전쟁 포로였던 제국 내 최고의 장인들이 동원되었으며, 인도에서 데리고 온 95마리의 코끼리들이 대리석을 운반하였다. 비비하님 모스크는 높이가 35m이며 미나레트의 높이는 50m이다. 안뜰은 직사각형으로, 대리석으로 포장되었고, 모퉁이에는 미나레트가 서 있으며, 가장자리에는 400개의 대리석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400개의 둥근 지붕으로 이루어진 회랑이 있다. 안뜰의 남쪽과 북쪽에는 보조 모스크들이 있으며 동쪽에는 높이 40m에 달하는 정문이 위치해 있다. 그리고 건물들은 대리석 조각, 테라코타, .. 2015. 2. 20.
사마르칸트 ② : 레기스탄 Registan 주변 레기스탄 Registan ‘레기’는 타지크어로 모래, ‘스탄’은 땅이란 의미로, 따라서 레기스탄은 모래의 땅을 뜻한다. 이러한 이름이 붙은 것은 광장 북쪽을 흐르는 운하 주변에 모래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레기스탄은 사마르칸트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킹기스칸 시대부터 이미 사마르칸트의 중심지였으며 칸의 알현식, 사열식 등이 이곳에서 열렸다. 티무르 시대에도 이곳은 여섯 개의 간선도로가 만나는 교차점이었고, 바자르가 위치했다. 15세기에 티무르의 손자인 울르그 벡은 광장의 서쪽에 신학교를 건축하기 시작했다. (Ulugbek Madrassah) 반대쪽에는 기존에 있던 바자르를 헐고 여행자 숙소(khanagha)를 지었다. 그리고 북쪽에는 대상을 위한 숙소 Mirza Caravanserai를, .. 2015. 2. 20.
사마르칸트 ① : 도시의 역사 Samarqand / Самарка́нд 사마르칸트에 도시 문명이 시작된 것은 적어도 기원전 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초기의 역사는 거의 베일에 가려져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기원전 329년에 이곳에 도착했을 때 사마르칸트는 소그디아나의 중심지였으며 부유했고 둘레가 13km에 달하는 요새로 둘러싸여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별 저항을 받지 않고 이 도시를 차지한 뒤 이렇게 말했다. “이 도시의 부유함에 대해 내가 들었던 것은 모두 사실이었다. 오히려 그것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다.” 고고학 발굴은 이 지역이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들에 의해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쿠샨 조의 권력이 이곳까지 미쳤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기원후 1세기에 사마르칸트는 황폐해져 있었다. 그러나 3세기 이후부.. 2015.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