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당히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고 늘 자부하고 그렇게 생각해 왔다. 내가 가진 것에 대해 늘 솔직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했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 남성과 여성 모두 - 그런 상황의 경우 존중할 자세가 되어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언젠가 모 여자애랑 대화를 하던 중, 욕망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녀는 여성이 가진 성욕이라든가 판타지, 욕망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굉장히 불편했다. 마치 여성은 그런걸 가져서는 안된다거나, 혹은 그걸 가지고 있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면 안된다고 믿는 사람들이었던 것처럼 내가 그런 대화에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성욕을 가진 것은 당당한 것이고, 그것을 다른 사람의 눈에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라고 떠들고 다녔던 것이다. 정작 여성에 대해서는 이해할 자세도, 능력도 되어 있질 않았으면서.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질 못하면서도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자만했던, 객기였음을 깨달았던, 무척 부끄러운 경험이었다. 그 뒤로 내가 얼마만큼 전진했는지 알 수 없지만. (물론 나의 자세와 준비에 상관없이 그건 당연히 그들의 자연스러운 권리다.)
가인의 뮤직비디오. 이 노래의 가사는 노골적이고, 뮤직비디오는 뻔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섹스에 관한 표현으로 혹은 암시로 뒤덮여 있는 이 뮤직비디오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라고 한다면 주방에 앉아 자위를 하는 장면일 것이다. 여성이 가진 욕망. - 물론 내 기억에 따르면 지금껏 남성이 자위하는, 혹은 그걸 암시하는 내용이 뮤직비디오에 나온 적은 단 한번도 없다 - 그건 당연한 것이고 우리가 이해하고 이해하지 못하고의 문제 밖의 것이다. 그런데도 이것이 충격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아직 우리가 가진 지식에도 불구하고 정작 현실에서는 그런 것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뜻이겠지. 이 뮤직비디오는 옛날의 그 기억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하긴 요즘 여성의 지위도 참 많이 올라왔다. 이런 내용이 당당하게 나오는 시절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