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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요객잔에서

by Mr. Trollope 2013. 4. 24.




이 글은 지난 4월 13일에 쓴 것이다.




주말에 짬을 내서 3박 4일 태원-평요에 갔다왔다. 머문 곳이 바로 평요객잔. 객잔(客栈)이란, 중국에서 특정한 숙박업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중국의 호텔은 일반적으로 1성-5성급으로 분류하는 것 이외에도 이름으로 분류할 수도 있는데, 대주점(大酒店), 반관(饭馆) 등은 4성급 이상을, 주점(酒店) 등은 3성-4성급이며 2성-3성급에는 대개 빈관(宾馆)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그 아래 1성-2성급에는 초대소(招待所)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이것과는 달리 숙박업소의 성격에 따라 붙이는 이름이 있다. 여사(旅舍)는 게스트하우스를 가리키며, 객잔은 전통 주거양식을 유지한 호텔에서 사용한다. 그렇다고 해서 시설이 낡은 것은 아니고 내가 보기에 평요객잔이 3성급 정도 되는 것 같다.


내가 오랫동안 골몰해 온 문제 중의 하나는 도농연속체(Rural Urban Continuum)란 것이었다. 중간에 논문을 엎지만 않았다면 내 석사논문의 주제는 이거였겠지. 도농연속체란 중국의 도시-향촌이 (유럽과 같이) 단절되지 않고 연속적인 공간을 이룬다는 개념으로, 1970년대 처음 등장한 이후 중국사학자들에게 줄곧 골치거리가 되어 왔다. 그동안 수많은 학자들이 이 개념을 부수기 위해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으며, 나 역시 (잠시나마) 이 문제에 뛰어들었다. 여기에 수십년을 바친 다른 학자들에 비하면 그저 찰나에 불과한 순간이었겠지만. 하지만 이제서야 비로소 난 그게 옳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이곳에 온 뒤에 깨달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도시 전체에서 느껴지는 농촌의 압도적인 존재감이었다. 21세기 서안에서, 태원에서, 평요를 보고 17세기 남경을 상상하는 것이 과연 지나친 것일까? 어쩐지 모르게 그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평요에서 쌩둥맞게 이 문제가 생각났다. 내가 도시사를 선택한 이유는 농촌에서 태어나 도시로 넘어온 이후부터 줄곧 도시와 농촌 사이의 격차를 느끼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농촌은 내가 태어난 곳이지만 도시는 내가 지향하는 곳이다. 농촌에서 난 늘 외로움을 느꼈고 그곳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밖에 없었고 마침내 난 도시에 도착했고 안도감을 느꼈다. 나름 괜찮은 학교에 들어간 것도 다행이었다. 여기에서는 내가 원하는 주제로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가 있었으니까. 이곳이야말로 내가 있을 곳이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시의 물질주의, 속물근성 등은 금새 나를 질리게 했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석사논문을 가끔씩 읽는데, 읽다 보면 내가 도시에 대해 얼마나 많은 적의를 느끼고 있는가를 깨닫곤 한다. 


그러다가 여기에서, 평요에서, 도시의 탈을 쓴 이 농촌에서, 바가지 요금을 쓰고 난 뒤 쫓겨나듯이 식당을 빠져나온 직후, 내가 도시로 오기 전에 농촌에서 어떻게 살았었는지를 기억해냈다. 그곳에서 내가 과거에 얼마나 많은 괴롭힘을 당하고, 소외되고, 질시를 받았는지. 결국 내가 갈 곳은 없다. 난 농촌을 떠나 도시로 왔고, 도시에 살면서 농촌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농촌은 나를 미워한다. 난 그곳에 속하지 못한다. 나를 받아주는 곳은 도시밖에 없다. 이거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날 좋아하지 않는 것일까. 씁쓸했다. 이게 평요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