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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역은 어쩌다 지역이기주의의 상징이 되었나

by Mr. Trollope 2021. 7. 21.

서울에서 부산, 서울에서 호남으로 연결되는 KTX,  대한민국의 자랑 이 KTX에서 가장 핫한 역은 서울역이 아니다. 오송역이다. 소위 오송 드리프트라고 해서 서울에서 내려가는 철로가 중간에 크게 휘어지면서 오송역에 닿고 여기에서 호남선과 경부선으로 나뉘어지기 때문이다. 이 역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 나무위키를 보고 참고하자면 - 지역이기주의의 끝판왕, 정치논리에 넘어간 무책임 행정의 표상이다. 

 

나는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화가 난다. 내가 오송역을 이용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이용할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오송역의 위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한다 - 대체로 세가지를 이유로 드는 것 같다. 하나는 오송역이 세워지면서 세종시의 교통이 나빠졌다. 둘째는 KTX의 선로가 휘어진 것이 지도에서 보면 이상하다. 셋째는 서울에서 익산까지 가는데 십여분 정도 늦어진다. 첫번째는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두번째와 세번째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냥 10분 늦게 가면 될 일 아닌가. 

 

오송역이 세워진 것은 정치논리에 넘어간 무능력한 행정의 결과라고 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정치논리가 아니라 이용하는 사람들의 수요 즉 경제논리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역이 지어질 곳에 위치한 사람들의 수요가 아니라, 그러니까 서울에 사는 사람들의 수요를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애초에 그렇게 수요가 형성된 배경은 서울을 중심으로 국토를 개발하고 경부선을 중심으로 개발하기로 결정한 것에 있는 것 아니었던가. 그게 정치논리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내가 학부를 졸업한지 오래 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정치란 우리가 가진 자원(가치)을 어떻게 배분할 지 결정하는 행위를 말한다. 즉 서울에 자원을 몰빵하고 경부선에 자원을 몰빵한 것 그게 정치논리 아닌가? 서울에 사는 도시 주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농산물의 가격을 통제하고 강제로 고정시킨 것은 정치논리 아닌가? 

 

물론 국토개발을 시작하기 전에도 서울이나 부산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비교를 해보자. 대한민국의 국토는 크기로는 포르투갈이나 헝가리, 오스트리아와 비슷하다. 인구로 따지면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와 비슷하다. 이들 나라중 대체 어떤 나라가 한국처럼, 인구의 절반이 서울과 그 주변에 몰려 있고 서울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편향된 국토환경을 갖고 있는지. 서울과 부산이 대도시인 것은 자연적인 결과이지만, 서울과 부산에 이렇게 극도로 편중된 경제구조 인구환경이 만들어진 것은 그렇게 개발하기로 결정한 정책의 결과, 명백한 정치논리의 결과물이다. 

 

나도 국토 불균형 개발에 동의한다. 그건 옳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전략이란건 먼저 국토의 일부를 개발하고 경제가 발전하면 나머지 국토를 개발한다는 합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경제가 발전하려면 사회의 일부를 먼저 성장시키고, 그 다음에 낙후된 곳에 투자를 한다. 이건 옳은 결정이다. 하지만 일단 경제가 발전하고 나니 분배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입을 씻고 이제는 경제논리를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말해보라. 이건 옳은 일인가? 우리가 가진 자원을 의도적으로 특정 지역에 몰빵하기로 결정한 것은 정치논리가 아니었다고 말하는 건가? 이제 와서 정치는 제껴두자. 인구가 많은 지역의 요구를 먼저 생각하자고?

 

 내가 충북 출신이기는 하지만, 어렸을 때는 세상을 잘 몰랐다.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서울에 십여년을 살았지만 이때는 그냥 그게 이런 세상이구나 싶었다. 코로나가 터지고 작년에 고향으로 돌아오고 난 뒤에서야 뭐가 문제인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한번은 대전에 가야 할 일이 생겼는데 교통편을 알아보다가 웃기는 걸 발견했다. 음성에서 대전까지 직접 가는 것보다 음성에서 먼저 서울로 갔다가 서울에서 대전으로 가는게 비슷하거나 더 빠르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음성에서 대전까지에는 기차편이 있다. 하지만 음성역까지 가는 것도 어렵고, 운행편수도 적다는 등등의 이유가 모인 결과가 이랬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오송역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서울에서 익산까지 가는게 13분 늦어진단다. 그게 문제라는 거다. 나는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화가 난다. 

 

화만 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분노는 이성을 마비시키고 국론을 분열시킬 수 있다. 이래서는 안된다. 오송역에 분개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분노하는 사람들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 이런건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그래서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해결책을 제시하고 싶다. 그건 태백 드리프트다. 서울에서 평택까지는 기존과 동일하다 평택에서 동쪽으로 꺾어서 태백까지 연결하고 태백에서 아래로 안동을 지나 대구까지 연결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대구에서 전주로 이어지든 부산으로 이어지든 편할대로 지으면 된다. 충청권의 눈치를 보느라 오송역같이 "꼴사나운" 걸 보지 않아도 되니 그들도 만족할 수 있을 거고 강원도나 경상북도처럼 교통환경이 낙후된 지역에게도 이득이 된다. 참 묘수다. 이러면 모두가 편안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