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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Film

뮌헨 - 전쟁의 끝자락에서(Munich Edge of War, 2021)

by Mr. Trollope 2022. 1. 31.

넷플릭스 오리지널

1938년 뮌헨협정을 둘러싼 독일과 영국의 외교전을 다룬 영화다. 당시 히틀러는 체코에 있는 독일인 거주지역을 요구하며 전쟁으로 위협하고 있었고, 영국은 독일의 확장을 저지하면서도 전쟁을 원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영화의 중심 인물은 영국의 총리보좌관인 휴, 독일쪽 파울, 그리고 영국의 총리 체임벌린 세명이다. 체임벌린은 전쟁을 막기 위해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쪽이고, 파울은 (히틀러는 이미 1937년에 전쟁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문서를 입수하고 협정을 체결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에 (더 큰 전쟁을 막기 위해) 협정을 맺으면 안된다는 입장이다. 휴는 중간에서 두 인물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영화가 전개상 커다란 억지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고, 역사가 어떻게 흘러갈지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호흡이 좋다. 제레미 아이언스나 조지 맥케이 같은 배우들의 연기력도 일품.  

 

2021년부터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서유럽과 러시아의 갈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오늘날과 견주어 볼 때 많은 점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체임벌린과 뮌헨 협정은 후대에 쿠바 위기와 같은 상황에서 유화책이 아닌 강경책을 선택할 때 중요한 근거로 제시되곤 했다. 또한 우크라이나 문제가 터진 2014년에도 러시아의 크림반도 재정복을 미국이 방치한 것을 뮌헨 협정에서 독일이 체코를 병탄하는 것을 방치한 영국과 비교하기도 했다. 

 

뮌헨협정에 대해서 간단히 정리를 하자면, 1930년대 히틀러가 집권한 다음 그의 주요한 정책은 독일민족의 부흥이었다. 당시 체코 슬로바키아의 북쪽 지역에는 많은 독일인이 살고 있었고, 히틀러는 "독일민족의 땅"이라며 이 땅을 요구했다. 요컨대 독일인은 하나의 나라로 뭉쳐 살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웃기는 주장이지만, 당시에는 정해진 국경이라는 것이 없었다. 실제 독일은 19세기부터 조금씩 주변 지역을 병합하고 살을 붙여가면서 프로이센에서 북독일연방으로 다시 독일제국으로 완성된 국가였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독일의 국경을 벗어나 다른 나라의 땅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체코는 이걸 막을 힘이 없었따. 영국과 프랑스가 대신 제동을 걸고 나섰다. 문제는 히틀러는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독일인의 땅을 "되찾겠다"고 으르렁대고 있었고, 무자비한 피를 흘리고 전쟁을 끝낸 기억이 아직 남아 있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선뜻 전쟁을 감수할 생각이 없었다.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이탈리아의 중재로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지도자들이 뮌헨에 모여 체코의 앞날을 논의하였다. 체코 대표는 참석하지 못했다. 회담의 결과, 체코는 독일, 폴란드, 헝가리에게 사분오열 찢겨졌고 아주 작은 영토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때 나온 것이 그 유명한 "우리 시대의 평화"라는 말이다. 히틀러는 더 이상 땅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고, 체임벌린은 히틀러의 약속이 담긴 문서를 들고 귀국해서 기자들 앞에서 선언한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우리 시대의 평화라고 믿는다. 

 

하지만 전쟁은 피하지 못했다. 반년 뒤, 히틀러는 나머지 체코 땅까지 집어 삼켰다. 슬로바키아는 명목 상의 독립국으로 남았다. (실제로는 독일의 괴뢰국이 되었다) 다시 반년 뒤, 독일은 폴랑드에게 단치히를 요구했고 폴란드가 거절하자 전쟁을 일으켰다. 영국과 프랑스도 이번에는 참지 않았다. 그들은 폴란드 편에 섰고 이것이 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다.


체임벌린이 맺은 뮌헨 협정은 실패한 협정이고, "우리 시대의 평화"는 후대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몬티 파이썬에서는 이것이 전쟁 전에 있었던 '세상에서 가장 웃긴 농담'이라고 불렀다. 어벤져스2:울트론 같은 영화에서도 우리 시대의 평화를 비웃었다. 체임벌린은 순진하고 나이브한 평화주의자였다. 그는 히틀러에게 속아서 체코를 팔아 넘겼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졌을 때 다시 한번 체임벌린이 소환되었다. 체임벌린 같은 멍청한 짓을 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저는 예전부터 체임벌린의 뮌헨협정은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쪽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나오지만, 뮌헨 협정을 체결하고도, 나중에 이걸 어김으로써 "히틀러는 못 믿을 인간이다"라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히틀러는 다시는 협상에서 이득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독일의 패배로 이어졌다. 영화 속 체임벌린도 히틀러가 믿지 못할 사람이란걸 알고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두가지였다. (전쟁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영국이 전쟁 준비를 다 마칠 때가지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 그리고 히틀러가 약속을 지킨다면 그것대로 좋은 일이지만, 만약 그가 약속을 어긴다면, 히틀러와는 어떠한 약속을 하면 안된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것. 

우리는 결과를 알고 있다. 뮌헨 협정은 깨졌고 전쟁은 일어났다. 파울은 (영화에 나오지 않지만 암시가 있다) 히틀러를 저지하는데 실패하고 사형을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체임벌린의 실패일까.

 

이 영화에서 핵심 인물은 파울(독일의 외무부 관리)과 휴(영국 총리의 보좌관이다) 그리고 영국 총리 체임벌린이다. 파울은 히틀러가 1년 전에 이미 정복전쟁을 계획하고 있다는 문서를 손에 넣었고 이것을 체임벌린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체임벌린은 문서를 손에 넣고도 협정을 체결한다. 그 이유는,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체임벌린이 파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이 둘이 대립하는 것처럼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체임벌린과 파울은 같은 입장이다. 그것은 모든 희망이 사라질 때까지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은 멈춰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미래는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된다는 것. 어찌보면 당시 우리나라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던 선열들의 입장도 이랬을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울과 체임벌린이 입장을 같이 하는 부분은 또 하나 더 있다. 파울과 독일 국방군의 장교들은 히틀러가 체코를 침공하려고 군대를 동원하면 쿠데타를 일으켜 히틀러를 처형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당시 오스터 등을 중심으로 이런 계획이 실제 존재했다) 하지만 뮌헨에서 회담이 일어나자 쿠데타 계획은 중지되었다. 왜냐하면 히틀러는 아직 전쟁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회담이 성사되는 것을 막으려고 했지만 체임벌린은 끝내 협정을 체결했다. 모든 희망을 잃고, 파울은 권총을 품에 숨긴 채 히틀러를 만난다. 방 안에 두 사람만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파울은 끝내 권총을 쏘지 못했다. 왜일까? 히틀러는 아직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유대인이 박해를 받고 있었지만 그것이 탄핵의 이유가 될지는 몰라도 쿠데타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우리는 미래를 알고 있지만, 1938년의 히틀러는 전쟁의 위험 속에서 대담한 도박으로 평화와 국익을 모두 잡은 영웅이었을 뿐이다. 

 

미래는 알 수 없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  

모든 희망이 사라질 때까지. 

 

마지막으로 한가지. 실패한 협정의 가치가 평가절하되어서는 안된다. 영화의 마지막에 체임벌린이 언급하였듯이, 체임벌린의 노력이 실패했기 때문에 영국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히틀러와 협상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완전히 드러났기 때문에 영국은 끝까지 내몰리는 순간까지도 협상에 응하지 않았다. 나폴레옹과 협상을 한 윌리엄 피트와, 협상을 받아들이지 않은 윈스턴 처칠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처칠에게는 체임벌린이 있었지만 피트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폴란드가 무너지고 프랑스가 넘어가고 런던이 폭격받는 상황에서도 처칠이 독일과의 협상에 응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독일과 협상을 해봤자 체임벌린처럼 당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렇게 당하고도 여전히, 독일과 협상을 해야 한다는 에드워드 8세 같은 사람이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라. 만약 체임벌린이 먼저 앞서서 실패하지 않았다면, 독일과의 협상이란 선택지는 여전히 영국 국민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영국이 몰리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 선택지를 고려해보라는 압박이 나왔을 것이다. 

 

내 생각에, 체임벌린은 나이브하지 않았다. 영국은 독일은 믿지 않았고 뮌헨 협정이 끝난 이후, 영국은 전쟁준비에 들어갔다. 이것이, 그가 히틀러를 믿지 않았다는 증거다. 단지, 영국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누군가는 말한다. 독일도 전쟁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고. 그것을 누가 알 수 있는가? 지금 러시아/중국이 미국/서유럽과 대결하고 있는 와중에도, 러시아와 중국에 관해 두가지 상반된 시각이 존재한다. 하나는 이들이 완전하게 재무장에 성공했고 미국과의 기술격차도 거의 극복했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이들은 껍데기만 갖춘 군대일 뿐이고 실제로는 아편전쟁 직전의 청나라와 다를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어느 쪽이 맞는지, 장담할 수 있을까? 정답은, 실제 전쟁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1938년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독일의 군대가 정말 강력한지 아닌지, 체임벌린이 무슨 수를 써도 그걸 알 방법이 없다.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의 기만작전에 속아넘어갔고 그렇기 실패했다는 주장은 가치가 없는 소리일 뿐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당시에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를 골랐다. 시간을 벌고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에게 안타까운 일은 그것이 단지 1년 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겠지만, 사실 1945년의 결과를 생각한다면 더 안타까워야 할 것은 독일이었을 것이다. 겨우 1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독일이 전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모든 사건이 끝난 이후에 역사를 평가하는 것만큼 쉬운 일이 없다. 그리고 그것만큼 어리석어 보이는 일이 없다. 모든 정보가 눈 앞에 펼쳐진 다음 평가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 정보를 갖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었는지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너무나 우스운 일이다. 체임벌린에게 불행한 일은, 총리 직에서 사임한 뒤 얼마 후에 사망했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을 변호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제 와서 그의 행동에 조금이라도 이해가 될만한 소설 그리고 영화가 나왔다는 것이 기쁘다.

 

2021년에 나온 영화 중에서 손꼽을 정도다.

7.5/10점을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