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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Film

스테이크 랜드(Stake Land, 2010)

by Mr. Trollope 2013. 9. 26.




본래 좀비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서 이러한 장르의 색다른 매력에 대해서 조금씩 깨달아가는 중이다. 지금껏 좀비물은 공포물이라고 생각해서 꺼려왔는데, 그것이 공포영화의 한 하위장르가 아니라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영화로 훌륭하게 그려내 보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밖에도 다양한 모습의 좀비를 보여주는 시도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보통 좀비가 나오는 영화에서의 좀비는, 공포의 원천으로서의 좀비가 나오거나(REC, 2007) 하는 것이 어쨌든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에서의 좀비를 등장시키거나(워킹데드 Walking Dead, 2010-present) 아니면 판데믹 월드로 급증하는 병원균으로 좀비(월드워Z World War Z, 2013)를 등장시킬 수도 있다. 최근에는 아예 웜 바디스(Warm Bodies, 2013)처럼 좀비가 연애하는 영화도 있다. 



스테이크 랜드는 그 중 하나이다. 그래서, 약간 독특하다. 여기에서 좀비는 좀비이면서 약간 뱀파이어의 성격도 갖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좀비란 것은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나오는 좀비는 부두교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원래 뱀파이어나 미이라의 설정과 섞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게 조금씩은 잇닿아 있기 마련이라 그것을 뒤섞는다고 해서 이건 좀비가 아냐 라든가, 이게 오리지날리티를 훼손시켰다, 좀비물을 오염시켰다고 얘기한다면 잘못이다. 여기에서 나오는 좀비는 몸통이나 머리에 총을 쏴도 죽지 않고 심장을 찔러야만 죽는다거나 하는 것과 같이 뱀파이어같은 요소도 있다. 처음에는 이 영화에서 나오는 좀비가 좀 낯설어서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생김새를 보면 뱀파이어에 가깝다. 영화에서도 뱀파이어라고 부르긴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뱀파이어의 특징인 흡혈과 이를 통한 전염이라는 요소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인간을 감염시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좀비도 마찬가지다. 대신에 살인과 고립, 생존에의 위협이 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내가 보기에 이것이 좀비에 가까운 것 같다.


좀비물이 참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수도 있구나 싶다. 아마도 바로 좀비라는 것의 성격에서 나오는 것 같은데 좀비를 소재로 했을 때의 장점은, 그들이 인간을 공격한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것 같다. 기존에는 최상위 포식자였던 인간이 사냥의 대상이 된다는 것에서 나오는 공포. 그리고 자신들을 전염시킴으로써 수를 늘리기 때문에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성을 박탈시키는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다. 싸우면 싸울수록 인간의 수는 줄어들고 좀비는 계속해서 늘어나는데서 나오는 공포가 만들어진다. 그러면서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말을 해서 스스로를 강변하지 않는다"는 점이 크다. 인간을 닮았지만 우리를 이해해주지 않는 사람들. 고립에서 공포가 나온다.


영화 나는 전설이다(I am Legend, 2007)와 같은 특이한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좀비와 인간은 대개 뚜렷이 구분된다. 좀비 무리에 둘러싸여 인간 사회는 위험을 맞이한다. 좀비가 늘어날수록 개체는 줄어들고 사람들은 더더욱 고립된다. 또한 좀비는 인간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좀비가 증식하면 할수록 인간 사회는 내부에서부터 파괴된다. 놀랍다. 최근에 이런 점을 깨달으면서 나는 아직도 영화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는걸 알았다. 




영화의 대체적인 내용은 주인공인 마틴이 좀비의 위험 속에서 그들과 마주하고 대결하면서 그걸 극복하고 성장하는 내용이다. 이를테면 청소년이 세상을 맞이하여 겪은 혼란과 두려움에 관한 성장물인 셈이다. 영화의 배경은 이미 좀비가 창궐한 상태이고 인물들도 모두 그걸 알고 있다. 부모와 함께 살고 있던 주인공은 좀비의 습격으로 부모를 잃는다. 미스터란 인물은 우연히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인데, 마틴은 그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다음 그와 함께 이동하면서 그에게서 생존을 위한 기술을 배운다. 둘의 목표는 "뉴 에덴"이라는 피난처다. 길 위에서 미스터는 그에게 좀비를 상대하는 법 등을 가르치고 때로는 좀비를 미끼로 잡아온 다음 마틴으로 하여금 일대일로 상대하도록 연습을 시킨다든지 하는 식의 교육을 함으로써 그가 좀비 사태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는 두 사람이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다른 한편으로는 로드 무비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는 분명 여정이라는 요소가 있다. 여행은 이야기가 있고 두 사람은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길 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을 변화시킨다. 마틴이 마주치는 사람들이 수녀, 전직 해병, 어린 임산부 등의 특이한 조합이라는 점도 재미있다. 사실 좀비영화의 기본적인 목표, 생존을 생각한다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마틴은 그들과의 교감 속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인간으로서의 사회를 재구축하여 마침내는 이를 극복한다. 이것이 일반적인 좀비영화와는 다른 점이다.



이 영화는 좀비를 소재로 하는 영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공포의 극대화 장치, 갑작스런 조우, 불의의 습격, 클로즈업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좀비영화답지 않게도 차창 밖을 응시하면서 나오는 독백, 낯선이와의 만남과 교류, 시련에 대비해 오랫동안 준비를 하고 그것에 도전하는 주인공 등등 그리고 롱샷과 더 가깝다. 좀비는 갑작스럽게 눈앞에 들이닥치지 않는다. 좀비영화에서 좀비는 갑자기 쳐들어온다. 좀비가 뭔지도 모르고 습격을 당하고 좀비가 한창 들끓게 된 이후에도 좀비는 나무 뒤에서, 창문 아래에서 갑자기 튀어나온다. 그렇게 공포를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속 인물들은 좀비가 어떤 존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좀비는 멀리서부터 접근한다. 그것들은 오랫동안 그리고 멀리서부터 지켜본 것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좀비는 '안'에서 나타나지 않고 '밖'에서 온다. 아니면 주인공이 마을 밖 세상을 여행하다가 마주치는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소년이, 부모를 잃고 험한 세상을 맞이하게 되지만 결국에는 이겨내고 독립할 수 있는 어른이 된다는 그런 이야기다. 좀비영화로도 이런 훈훈한 세상을 그려낼 수 있다. 물론 영화의 분위기가 그렇게 밝은 것은 아니지만, 희망과 내일, "에덴"이 존재한다는 설정이라면 이건 좀비물에선 크리스마스 선물과 마찬가지지.  


전체적으로 잔잔하면서도 스릴이 있는 영화다.




뱀발. 영화에서 등장하는 또 한가지 재미있는 설정은 "형제교"라는 광신교 집단이다. 그들은 좀비/뱀파이어를 자신의 신앙을 강화하는데 사용하여 이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대단히 강력하게 무장되어 있으며 자신들의 신앙에 따르지 않는 마을이 있으면 공격하고 불태우며, 심하게는 그들을 잡아다가 산채로 좀비떼 속에 던져버리기까지 한다. 단단히 무장한 요새가 있으면 트럭이나 헬리콥터에 좀비를 싣고 마을에 던져넣어서 함락시키는 짓도 한다. 이놈들은 마틴과 미스터가 "에덴"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된 가장 큰 위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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