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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Film

난징! 난징! (삶과 죽음의 도시 City of Life and Death, 2009)

by Mr. Trollope 2013. 1. 22.


1937년부터 1938년 봄까지 있었던 남경 대학살을 다룬 작품. 중국의 쉰들러라고 불리우는 욘 라베도 잠깐 등장한다. 남경대학살. 일본에서는 남경 사건이라고 부르는 이 문제는 2차 세계대전, 그리고 2차 중일전쟁 당시 저질러졌던 사건 중에서 가장 끔찍하고 가장 광범위하게 자행되었던 반인륜 범죄이다. 





영화를 보는 사람이면 처음에 나온 얼굴만 보고도 누가 주연급인지 잘 파악할 수 있으리라.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약간 당황했지만 이 영화는 대여섯명의 중심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가 되면서도 영화는 전혀 산만하지 않고 진중하며 끝까지  조심성을 놓지 않으면서 인물의 최후의 순간까지 추적해 들어간다. 이러한 시각은 흑백영화가 가진 장점 - 무게감 - 에 의해 극대화되면서 전쟁과 반인륜 범죄의 비극성을 강화시킨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공정하게 봤을 때가 아니라, 이 문제에서 '공정한' 시각 따위는 없다. 이 문제에 개입되지 않은 제3자가 왈가왈부하는게 과연 공정할 수 있는가?) 이 정도면 꽤 중립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중국의 입장을 최대한 살리기도 했지만 일본의 입장도 나름 반영해 주었으니. 이 부분은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人'이 등장한다는 것. (내 생각에 전쟁영화와 반정영화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전쟁영화에서는 적군이 말을 하지 않는다. 의미 없는 고함, 혹은 자막 없는 대사, 알 수 없는 지껄임으로 처리된다. 적이 말을 하면 그들은 '사람'이 되고 전쟁은 사람을 죽이는게 된다. 이건 전쟁영화에서는 절대로 하지 않는 짓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영화에서 '정상적인' 일본인이 나온다는 사실이 불편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등장은 큰 의미가 있다. 정상적인 일본인의 시각에서 남경이란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는 남경에서 벌어진 사건과 자신의 양심 속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며, 이 도시 속에서 제 3자, 관찰자(=즉 관객인 우리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그의 경험을 집어넣음으로 인해 관객은 그를 통해 도시 속에 직접 들어가 있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더불어 양심을 가진 인간으로서 그가 괴로워하는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이 사건이 단지 중국과 일본 사이의 전쟁에 불과한 이야기가 아니라, 전쟁에서 발생한 부수적인 피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이성을 지닌 일본인이 봤을 때도 감당하기 어려운 '반인륜적인' 범죄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이 인물이 존재함으로 인해 영화를 보는 우리까지도,  남경에서 벌어진 학살은 가증스런 전쟁범죄였다는 사실에 동의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위안부 문제 혹은 강제징용문제에 관한 영화가 만들어진다고 가정할 때 나는 수정주의적 의견 따위는 조금도 용납할 마음이 없다. 지금 이 영화의 중립적인 성격을 높이 산다면 그것은 내가 중국인도 일본인도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중국과 일본에서 모두 비판을 받고 해외에서는 호평을 받았다는 점은 이 영화가 객관성, 중립성, 공정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잘 뒷받침해준다.




이 영화가 예술적인 면에서의 완성도도 훌륭하게 갖추고 있다는 것 역시 언급할 필요가 있다. 전쟁과 빈인륜적 범죄라는 상황, 다양한 입장이 충돌하고 비인간적인 해결책이 강요되는 상황에서 각자는 살아남기 위해서 혹은 자신이 살아 있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발버둥친다. 그들의 선택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그들의 선택이 모두 맞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쨌건 선택을 하고, 받아들이고, 그렇게 살아가고 혹은 죽는다. 어느 인물 하나 진지하지 않은 인물은 없으며, 어느 인물 하나 다른 인물의 조연 혹은 그림자로 나타나지 않고, 온전하게 자신만의 개별적인 스토리를 갖고 등장한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장점이자 - 또한 중국 내에서 욕을 쳐먹은 이유라 생각되는 - 바로 한간(漢奸, 친일파, 친일 협력자, 부역자)에 대한 우호적인 시선 때문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탕 씨는 남경에 설치된 안전보호구역을 지켜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물인데 끝내는 일본군의 회유에 넘어가서 자멸적인 선택을 하고 마는 인물이다. 아마 종전까지 살아남았다면 한간으로 분류되어 사형당하기 딱 좋은 인물. 그럼에도 이 인물의 목소리(그의 해명)까지 담아냈다는 점이다. 중국인들이 싫어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를 가치있게 만드는 요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