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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전통시대 중국인 지식인이 신식 신문을 만났을 때

by Mr. Trollope 2009. 7. 18.

Henrietta Harrison의 "Newspapers and Nationalism in rural China1890-1929"라는 논문은 상대적으로 고립된 북부 중국의 한 지역에 사는 지식인이 작성한 일기에 대한 조사이다. Harrison의 의도는 만약 우리가 이 기록물을 분석한다면 우리가 20세기 초에 중국의 각 지방에서 정보의 원천으로서 신문이 정보 연결망 속에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지만, 정작 내 관심을 끈 것은 다른부분에서였다. 이 논문의 주인공인 劉大鵬(1857-1942)은 산서성 태원의 남쪽에 위치한 적교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유대붕은 1892년부터 1911년까지 20년동안 부근의 남석이라는 마을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곳 산서성은 높은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었음에도 무역과 상업이 발달한 곳이어서 상인에 의한 정보망으로 연결되어 있는 곳이었다. 유대붕은 자주 주변을 지나가는 상인또는 산서일보와 경보(중앙에서 발행하는 관보) 등을 접하면서 그에 대한 자신의 소감 혹 의견 등을 일기로 적어 기록으로 남겼다. 그 중 나의 흥미를 끌었던 부분이 이것이다.


"..... 전략 .... 신문의 해석은 또한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독서 스타일에 의해 영향을 받았는데, 그것은 수입된 신문의 형식과 배치와는 다른 것이었다. 근대 중국 신문들이 모델로 삼았던 서구식 신문은 일련의 연속된 단락을 갖는 책과 같은 배치가 아니라 대비되는 서체의 제목을 가진 기사들로 구분되었다. 신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혀지기를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데에 있어서 주의를 요구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디자인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독서 습관이 본문의 배치에 의해 함축된 의도와 부합했을까? 戈公振은 1920년대에 발간된 중국 신문에 관한 연구에서 다음에 주목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중국인들이 신문을 읽을 때 하나의 단어도 빠뜨리지 않고 보통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고 말한다" 그는 공무와 관련된 사람들이 이렇듯 철저한 독서를 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라며 이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비판을 가했다. 유대붕의 신문 읽기 습관에 대한 조사는 비록 대다수의 근대적 신문의 발행인들에게 유쾌한 결과는 아니었겠지만, 이러한 독서 스타일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증거를 보여준다. 유대붕은 동트기 전에 일어나서 등불을 밝히고, 때때로 명상에 잠기며 사서를 읽는 습관이 있었다. 청년 시절에 그는 과거를 준비하면서 지식과 지각을 확장시키기 위한 도구로서 사서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후에 그가 신문을 읽기 위해 왔을 때, 그는 나머지 식구들이 일어나기 전에 조용한 새벽 항상 같은 시간에 일어나 신문을 읽었다. 그것은 근대 신문을 위해 디자인된 선택적 읽기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실제로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던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1914년 기사에 대해 논평했는데, 그 기사는 申報의 맨 마지막 쪽의 작은 면으로 된 지역 뉴스 섹션이었고, 그 내용은 강소성이나 절강성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와 관련된 뉴스였기 때문이다. 1914년 유럽 전쟁(1차세계대전을 가리킨다) 발발에 관한 신문기사에 대한 유대붕의 논평은 그의 신문에 대한 해석이 그의 독서 습관, 태도 및 도덕적 가치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후략..."

(Henrietta Harrison, 「Newspapers and Nationalism in rural China1890-1929」 , 『Twentieth-century China: New Approaches』, 2003)



이제는 꽤나 식상한 논의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싶지만, 수입된 문물의 속도와 지식이나 사상의 속도는 언제나 다르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우리가 미처 생각에 포함하지 못하는 의식 깊숙한 곳의 습관이나 무의식 그리고 우리가 사는 문명의 거대한 물질 문명의 압도적인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다. 근대적인 신문을 제작하는 편집장에게는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이었겠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지금껏 해오던 대로 미래를 준비하는 법이다. 사람들은 그저 하루를 살아갈 뿐이고, 역사가가 되었건, 정치학자 혹은 사회학자 심지어 경제학자 나부랭이도 그들에 대해 이러쿵 논평하는 것은 그저 오만한 행동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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