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瀟湘館/서안(2013)

서안 비림박물관(西安碑林博物館)

by Mr. Trollope 2013. 3. 19.




서안 비림박물관(西安碑林博物館)은 1944년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곳에 보관되어 있는 수많은 비석들은 900여 년에 걸쳐 수집․보관된 “西安碑林”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졌다. 원래 여기에는 공묘(孔廟)가 있었는데 그동안 서안에서 보관하고 있던 비석과 묘지명 등과 석각 예술작품 등까지 몽땅 이곳에 합쳐서 비림박물관으로 만들었다. 때문에 크게 공묘와 비림, 석각예술관의 3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 


원래 여기는 삼학가(三學街)라고 불리던 곳이었는데 청대 장안현학(長安學)、서안부학(府學)、함녕현학(鹹寧學)의 세 학교가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처음 이곳에 비석을 보관한 것은 송대 원우(元佑) 2년(1087)에 개성석경(開成石經)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것이 처음이다. 그 이후 900여 년의 시간에 걸쳐 역대 왕조에서 비석․묘비병․석각 예술작품 등을 모으던 것이 계속 늘어나 현재의 규모가 되었다. 이곳에는 현재 6개의 비랑(碑廊), 7개의 비실(碑室), 8개의 비정(碑亭)을 갖추고 있으며 이곳에 보관하고 있는 비석은 모두 1,087점에 달한다. 


 비석 전시실은 모두 7개인데 첫번째 전시실에는 《開成石經》이 있는데 여기에는 《周易》, 《尚書》, 《詩經》, 《禮記》, 《春秋左氏傳》, 《論語》, 《孝經》, 《爾雅》 등 12개의 경서가 조각되어 있으며 모두 60만 자 114점이다. 청대에 들어와 《孟子》를 새겨 이곳에 보충하여 모두 “13경”이 되었다. 경서를 옮길 때 생길 수 있는 오탈자를 방지하기 위해 극도의 주의를 기울였으며 각 글자를 어떻게 쓰고 어떤 글자를 선택할 것인가를 엄격하게 규정, 그 규칙을 기록한 비석이 따로 존재한다.


 두번째 전시실에는 대개 당대의 비석이 중심이 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네임드만을 언급한다면 《大秦景教流傳中國碑》, 《不空和尚碑》이 있다. 그 외에도 수많은 네임드 비석이 있지만 관심이 없으므로 따로 적지 않겠다. 


 세번째 전시실에는 한대에서 송대에 이르기까지의 비석이 전시되어 있다. 이 중에서는 전서(篆書)로 새긴 《美原神泉詩序》와 한대의 《曹全碑》 등이 유명하다. 마찬가지로 적지 않는다. 


네번째 전시실에는 송대에서 청대에 이르기까지의 비석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 중에는 후덜덜한 네임드인 소식(蘇軾), 황정견(黃庭堅), 조맹부(趙孟頫), 미불(米芾), 축윤명(祝允明) 등의 시문(詩文)이 적혀 있다. 필견할 것. 


다섯번째 전시실에는 송-원-명-청 시기 각 지방사 자료가 되는 비석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청대의 것이 가장 많다. 그 내용의 대부분은 사묘를 수리한 내용, 누구의 공적을 기록한 내용, 토지의 면적 등을 기록한 내용, 학교의 재정에 기부한 내용, 공공시설을 수리하는데 돈을 보탰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여섯번째 전시실에는 약간의 원, 명대 문인들의 시문 작품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청대 문인들의 시사가부(詩詞歌賦)들이다. 그 중에서 원대 조맹부(趙孟頫)와 명대 동기창(董其昌)의 것, 청대 강희제의 것과 임칙서의 것 등이 유명하다. 


 일곱번째 전시실에는 청대에 순화비각첩(淳化秘閣帖)을 이용하여 새긴 것인데 모두 145점이다. 그 비석의 양면에는 역대 왕조의 황제들과 대신들 및 서법가들의 여러가지 글씨체를 옮겨 새겼으며 그 중에는 왕희지(王羲之)와 왕헌지(王獻之)의 초서(草書)도 있다.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教流傳中國碑)


대진(大秦)은 중국에서 로마를 부르던 이름이고 경교(景教)는 기독교의 한 지류인 네스토리우스파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비석에는 당 정관 9년(635)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가 중국에 전해진 이래 781년까지 약 150년간 어떻게 전파되고, 성장하고 발전하였는가에 관한 기록을 담고 있다. 





감시상비기(感時傷悲記)


이 비석은 명 말기 숭정 16년(1643)에 세워진 것인데 1635년부터 1642년 동안 섬서 지방에 얼마나 많은 재난이 발생하였고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고통을 받았는가, 관리들이 얼마나 부패하고 탐욕스러웠는가 그리고 당시 곡식의 가격이 얼마나 상승하였는가를 적고 있는데 당시의 상황에 대한 비통한 감상과 비판적인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숭정사양사창행군시(崇貞賜楊嗣昌行軍詩)


이 비석은 숭정 12년(1639) 숭정제가 농민 반란을 진압하도록 양사창을 파견하면서 내린 시를 적고 있다. 뒷면에는 당시의 관리였던 당소요(唐紹堯)가 적은 것인데 숭정제와 양사창의 공덕을 찬양하는 한편 반란을 일으킨 농민군에 대한 비난을 담고 있다. 이 또한 당시 농민 반란의 정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도움을 주는 자료로 활용된다.  




명덕수기비(明德受記碑)


대순 영창(永昌) 원년(1644)에 세워진 것인데, 대순은 이자성이 세운 왕조의 이름이고, 영창은 당시의 연호이다. 이 비석에는 당시 섬서 지역에 심각한 기근이 들어 이자성이 천명을 받아 명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군대를 일으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당시 자신들의 대의명분을 설명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대순 정권은 지극히 단명한 왕조이기 때문에 이 나라의 이름과 연호가 적혀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말릉여사송회계장생시첩(秣陵旅舍送會稽章生詩帖)


비석이 세워진 것은 청대 강희 40년(1701)이지만 여기에 적힌 것은 명대의 유명한 화가이자 문인인 동기창의 것이다. 청대 섬서포정사였던 달찰선(達札善)이 자신이 갖고 있던 동기창의 작품 말릉여사송회계장생시첩(秣陵旅舍送會稽章生詩帖)을 비석에다 새겨 만들었다. 





 입장료는 3월에서 11월까지는 75원, 12월에서 2월까지는 50원이며 학생할인을 하면 반값에 해준다.


'瀟湘館 > 서안(201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식에 관해서  (0) 2013.06.10
C'est la vie  (0) 2013.06.08
섬서 민속예술공원(陕西民俗大观园)  (0) 2013.03.17
부용원(芙蓉园 또는 芙蓉苑)  (0) 2013.03.14
내 서안 여행에서의 목표  (0) 2013.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