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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TV Series

워킹 데드(Walking Dead 2010-present)

by Mr. Trollope 2013. 9. 30.



아인 랜드가 말했다. 인간은 좀비처럼 살아서는 안된다고. 물론 그녀가 말한 좀비는 이 드라마에서 나오는 좀비가 아니다. 여기에서 좀비란 살기 위해 사는 인간, 목표를 위해 사는 경주하지 않는 인간, 삶과 죽음 사이 선택의 기로에 서기를 거부하는 인간, 무가치한 삶을 사는 인간을 가리킨다. 그녀에게 있어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 삶을 생기있는 것으로, 가치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투쟁이다. 투쟁은, 우리가 언젠가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에서 나오는 것이며,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그 계속적인 위험과의 투쟁 속에서 비로소 살아있게 된다. 즉 죽음이야말로 삶을 극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내가 비록 그녀의 생각에 전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테마가 가진 매력을 부정하진 않는다. 그렇다. 인간을 활력있게 하는 것은 계속적인 투쟁이다. 투쟁하는 인간이 곧 살아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이 좀비를 구별짓는다. 그렇다면 생존을 위한 좀비와의 투쟁이라면 오죽 그러하겠는가.


워킹데드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계를 다룬 드라마다. 주인공 릭, 그는 경찰인데 범죄자를 쫓다가 총상을 입고 병원에 누워 있다가 -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지만 - 깨어나보니 세상이 좀비가 창궐한 상태더라 라는 설정이다. 도로 위에는 차가 멈춰서있고 길 위에는 시체들이 나뒹굴고 있으며 건물과 상점은 텅 비었다. 세상이 온통 좀비로 둘러싸여 버렸다. 이 드라마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이러한 좀비 사태 속에서 주인공 릭을 중심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살아 남기 위해 싸우는 내용이다. 






앞서 좀비가 되지 않기 위한 투쟁은 삶을 활력 있게 만든다고 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의 투쟁은 전혀 활력있지가 못하고 더없이 절망적이기만 하다. 전체적으로 드라마는 꿈도 희망도 없어란 분위기여서 드라마 속에는 그저 죽지 못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냉전시대에, 공산주의로부터 자유 민주세계를 수호한다는 사명감으로 가득했던 시대 아인 랜드의 사람들에게는 투쟁이 그들을 가치 있게 만들어줬을지 몰라도.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투쟁은 지나치게 버거운 것 같다. 21세기의 사람들에게 투쟁은 맞서 싸워야 할 상대를 잃고 싸워야 하는 명분도 없다. 미국 내에서도, 진보와 보수, 의료보험, 동성애, 증세/감세와 같은 문제는 적군과 아군이 뒤섞인 혼란스런 상태에 빠졌다. 9.11 이후 생생해진 테러의 위협으로 전쟁은 더 이상 국외의 뉴스가 아니라 미국민들의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와 이제 현실이 되었다. 싸우는 것도 힘들다. 이 모두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절망으로, 그렇게 오늘의 하루는 그저 고통스러운 시간이 하루 더 늘어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 드라마의 배경, 조지아 주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Wind>가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 는 대표적인 미국 남부의, 보수적인 주이다. 그리고 총은 자신을 지키는 당연한 권리다 라는 헌법수정 2조를 철썩같이 믿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말이 있다. 좀비 영화에서 좀비가 빠질 수는 있어도, 총이 빠지면 좀비 영화가 아니라고. 이 드라마에서도 총은 뗄레야 뗄 수 없는 필수적인 요소라서, 모두가 총을 들고 있다. 총기 소유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가장 필수적인 권리이고, 나와 가족을 위협한다면 여기에 대항해서 총을 드는 것은 당연한, 자연스러운 권리다. 나, 우리 가족, 국가를 위협하는 적을 상대하는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다. "우리 눈 앞에 적이 있다. 살고 싶다면 싸워라." 이것과 같은 대사가 같은 좀비 영화인 월드워Z에서도 똑같이 나온다. 하지만 그 영화 속 북부 자유주의자가 하는 대사의 메마른 음성과는 달리, 이 드라마에서는 격정적으로, 극적으로, 터져 나온다. 


싸워라. 이 드라마에서, 좀 더 좁혀보자면 시즌2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 바로 여기다. 그린 농장의 헛간 앞에서 셰인이 연설을 하는 장면이다. "저놈들은 인간이 아니다 우리와 다르다 저놈들이 우리 전부를 죽일꺼야 저놈들이 우리 옆에서 살고 있는걸 참고 지내는 것도 이젠 충분하다 만약 살아남고 싶으면 싸워라." 그런 다음 셰인은 헛간의 문을 열고 좀비를 풀어 놓는다. 그리고 헛간에서 걸어 나오는 좀비를 하나씩 쏴죽인다. 다른 사람들도 셰인의 말에 따라서 혹은 따르지는 않지만 눈 앞에 닥친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그 옆에 나란히 선다. 이런 장면은, 이 드라마에서 흔치 않는 장면이다. 줄을 지어 걸어 나오는 좀비를 향해 일렬로 서서 총을 쏴 쓰러뜨리는 모습, 명백하게도 이건 처형이다. 그리고 이 광기를 멈춘 것은 헛간에서 걸어 나온 마지막 좀비였다.(스포일러!) 이 순간, 그들은 우리와 다르다 라는 셰인의 외침이 분쇄되었다. 


아마도 좀비가 실제로 창궐한다고 가정한다면 그것이 우리 사회 내부에서 발생한다는 점이야말로 좀비가 갖는 가장 무서운 요소가 될 것이다. 외부의 위협은, 우리를 단결시킨다. 그게 누구든. 적이 우리 문앞에 있다는 호소 만큼 효과적인게 없다. 하지만 좀비는, 방금 전까지는 같은 인간이었어도 일단 경계를 넘어서면 (Turn) 좀비가 된다. 좀비는 우리 속에 있고 피아의 구별은 무의미하다. 적의 침입에 대항하자는 호소가 의용군을 징병한다쳐도 결국 우리는 홀로 선 개인일 뿐이다. 그럼 과연 우리는 그때에도 총을 들 수 있을까? [각주:1]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구분짓고 경계짓고 '그들'로 부르며 배척하는 것이, 실은 비이성적이고 야만적이라는 사실을 언제쯤 깨닫게 될까. 생존을 위해서는 투쟁하라는 호소가, 우리를 인간답게 하기 위한 투쟁이, 실은 우리를 인간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사실 말이다.




워킹데드의 인트로는 오싹할 정도로 멋지다. 특히 처음에 나오는 문 손잡이가 돌아가는 장면. 이건 좀비가 된 부인이 매일 밤 집에 찾아와서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애쓰는 장면이다. (문은 널판지로 막아 놓았다) 남편은 좀비가 된 부인이 매일밤 집 앞에 와 있다는 것도 알고 자꾸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녀를 쏴 죽여야 (영면에 들게 해 주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총을 들고도 그녀를 쏘지 못했다. 





의기양양하게도, 근대 사회는 종국을 맞이하였고 승리는 결정되었다는 선언이 나온 것이 벌써 20년이다. 오늘날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음울한 불안감을 느낀다. 어떤 사람들은 적이 문 앞에 와 있다고 계속해서 소리를 치고 있다.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총을 들게 하지만, 나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민병대는 소집되었고 계속해서 싸울 것을 요구받는다. 위험은 끊임없이 우리를 위험에서 다른 위험으로 내몰고 있으며 그들이 제공하는 열정과 지성은 배회하다가 현실의 만족을 위해 지불되고 말 뿐이다. 쌓여 가는 피로감이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끝내는 달랠 수 없는 긴장감으로 이어진다. 패배감이 든다.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는 두려움이, 이런 무기력감이, 현대 개인의 투쟁에서도 절망감이 보인다.



대중에 맞서 오롯이 선 개인이라는 생각이 그녀에게는 아찔한 흥분을 주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지금의 병사들은 개인으로 내동댕이쳐진 채 전장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 뿐이다. 더군다나 그들이 몹시 찬양하며 부르짖는 전사의 모습은 다수의 좀비 무리에 맞서는 언제나 당당한 개인이어야 하지만 지금의 우리가 그러기에는 너무나 무력한 것 같다. 불안과 공포에 홀로 맞서야 하는 이들에게 총 한자루 달랑 쥐어주고 창조력과 용기를 기대한다니. 우리에게는 무한한 투쟁만이 자연스러운 질서이고 필요한 것은 용기와 배짱 도전 뿐이라는 복음은 높이 울려퍼지는데, 정작 지금 우리 속에서 흥하는 것은 힐링이다 뭐다 하는 그런 구원을 갈망하는 외침 뿐이지않나.




아래의 포스터는 볼때마다 나를 쓸데없는 망상에 빠지게 한다. 이걸 보면 자꾸 이것 저것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도망치는 대중과 전진하는 개인, 도로에 갇힌 사람들과 자유로운 주인공, 아래로 추락하는 집단과 위로 상승하는 개인. 자동차를 탄 도시인과 말을 탄 자연인의 이미지 등. 그것이 한없이 당당해 보이지만, 또한 더없이 우울해 보이는 것은 초췌해진 내 멘탈이 만들어낸 망상이겠지.









  1. 재미있게도 여기에 딱 반대되는 좀비영화가 있다. 웜 바디스(Warm Bodies)가 그것인데 여기에서는 좀비도 다시 인간이 될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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