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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TV Series

저스티파이드(Justified, 2010-present)

by Mr. Trollope 2014. 3. 17.




레일런(Raylan)이라는 보안관과 그 주변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원래는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서 근무했지만 자신이 쫓던 범죄자를 사살한 일 때문에 고향인 켄터키 주 할란 카운티로 재배치되었다.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 사건의 내역은 이러하다. 레일런이 오랫동안 쫓던 토미 벅스라는 범죄자가 있었는데 레일런은 그를 찾아낸 다음 24시간 이내에 마이애미를 떠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사살하겠다고 선언했다. 다음날 다시 찾아갔을 때 토미 벅스는 식사중이었다. 24시간이 모두 지났을 때 토미 벅스는 테이블 아래에서 총을 꺼내 쏘려고 했지만 레일런이 더 빨랐고 결국은 정당방위로 무죄가 되었다. 하지만 대낮에 시내 한복판에서 범죄자를 사살한 일 때문에 논란이 생겼고 소란을 피해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범죄자로 하여금 총을 빼어들 수 밖에 없게끔 그가 몰아붙였다는 점에 있다. 24시간의 유예도, 그가 먼저 총을 꺼내게 만든 것도 모두 그 때문이었다. 레일런은 그 자를 죽일 생각이었다. 다만 정당방위란 이름이 필요했을 뿐이다.


Art : 총격 사건에 대해서 말해봐
Raylan : 정당방위였어요 (It was Justified)

- 시즌1 에피소드 1에서


미국 드라마에서 정당방위란 놈은 굉장히 빈번하게 등장하는 개념으로 매우 재미난 놈이다. 왜냐하면 동양법에서는[각주:1] 전통적으로 이러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정당화되려면,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는 권한=법을 집행하는 권한이 개인에게 내려져야 한다. 일종의 사적 제재의 개념이다. 하지만 사적 제재 즉 사형(私刑)의 개념은 옛부터 동양법에서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인정되지 않았다. 개인이 어떠한 불공정한 피해를 입었던 상관없이 그 벌을 집행하는 것은 공(公) 즉 관(官)이어야 했고 자신이 직접 처벌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때문에 자신이 어떠한 피해를 입었든 상관없이 개인이 나서서 복수해서는 안된다.  <장화, 홍련>에서 장화와 홍련은 계모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음에도 복수를 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들은 귀신이 되어서 까지도, 국가가 가진 권위를 넘어서지 못하였고 결국은 자신의 원한을 '들어줄' 신임 사또가 도착할 때 까지 기다려야 했다. 아무리 억울한 사정이 있다고 해도 개인은 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



반면, <피리부는 사나이>의 사나이는 아이들을 꾀어 사라진다. 페로의 <빨간 모자>에서 소녀는 늑대를 우물에 빠뜨려 죽이며 <이솝 우화>에서도 수많은 '복수'의 플롯을 만날 수 있다. 복수는 죄값을 받아야 하는 사람에게 내려져야 하는 것으로, 정의로운 것 정당한 것이다. 복수는 상대적으로, 서양에서는 흔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복수하는 사람은 다른 공공기관의 도움을 거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복수를 실행한다. 정의는 개인에 의해서도 실현될 수 있다. (그리스법이나 로마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6세기 살리카 법(Salic law) 이래로 이러한 복수의 정당성은 계속해서 긍정되었다. 이러한 개념은 중세로 이어지면서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었다. 이를테면, 자신이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똑같이 갚는 것이 정당하며(복수), 선악의 구별을 신이 결정해 주었기 때문에 다른 누구를 해치는 것이 정당하며 (결투), 시련을 통해 신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자를 처벌하는 것이 (신명재판), 정당할 수 있었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동생을 죽이고 아버지와 함께 도주한 이벨린의 발리앙을 영주의 아들이 쫓는 장면에서 영주의 아들이 발리앙의 죄를 묻자 옆의 독일 기사가 "결투로 해결하자"고 말하는 장면이다. 이 때 옆의 동료 기사(구호기사단 소속)는 "이 독일 친구가 법을 좀 알지"라고 덧붙이는데, 이는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일대일로 한번 싸워볼테냐란 도발이 아니라, 법에 따라 심판하자는 지극히 타당한 요구다. 


이것은 중세의 종말과 함께 생명을 잃었다.  <삼총사Les Trois Mousquetaires>가 바로 이 시기의 일인데 달타냥 및 삼총사가 리슐리외 추기경과 충돌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의 하나가 바로 리슐리외 추기경에 의해 도입된 "결투 금지"라는 명령 때문이다. 리슐리외 추기경과 달타냥의 대결은 서양의 중세와 근세(또는 근대)의 대결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개인은 더 이상 정의가 될 수 없다. 법을 집행하는 권한을 가진 기관(경찰)이 도입되었고 개인이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범위는 최소한으로 제한되었다. 그게 정당방위의 개념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근대민족국가의 형성과정을 합법적인 폭력과 불법적인 폭력을 구분하는 권력을 국가가 독점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근대에서는 폭력이 오직 국가에만 귀속되며, '법과 질서'에 의한 보호라는 합법적인 폭력과 '노골적이고 야만적이며 조직화되지 않은' 불법적인 폭력이 구분된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폭력이란 타인에 대해 불법. 부당한 방법으로 강제력을 행사하는 일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폭력을 강제력의 행사에 있지 않다. 폭력은 그것이 '불법, 부당'하게 행사될 때 성립된다. 비록 그의 관심은 국가 단위의 폭력에 있지만 이것은 보다 미시적으로 국가 하부단위에서 전근대에서 근대로 전환되는 시기에 폭력이 독점되는 과정에서 대단히 유용한 분석을 제공한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설명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폭력의 개념이 가진 역사성도 암시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근대의 등장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치안유지기관(Law Enforcement)이 설립되었다는 점이다.[각주:2] 치안을, 질서를 유지한다 함은 - 그의 용어를 사용한다면, 합법성을 재분배하는 행위다. 그것은 비합법적인 폭력을 제거함과 동시에 유용한 폭력을 합법화하는 행위이며 결국, 정당한(Justified) 폭력은 폭력이 아니다. 오늘날, 비록 결투는 어느 나라에서건 금지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그것은 정당방위라는 개념으로 현대에서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정당방위가 미국과 같은 곳에서는 매우 폭넓게 긍정되고 있는 반면 한국 등에서는 그것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결투는 정당방위와 같은 뿌리를 가진 형제다. 이걸 개인에게 폭넓은 재량을 부여하였던 오랜 기억을 가진 나라와 정의를 국가가 독점하고 개인을 인정해주지 않았던 나라의 차이라고 봐도 될까.



FX "Justified" Main Titles from Elastic on Vimeo.


정당방위라는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굳이 이게 드라마의 제목이라서가 아니라, 그것이 드라마의 인물들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이기 때문이다. 총을 들어 사람을 죽인다고 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주인공 혼자만이 아니다. <워킹 데드Walking Dead>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총기소유를 가능하게 하는 힘은 개인이 스스로를 지킬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이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폭력은 정당하다는 개념으로 연결된다. 때문에 총을 들어 저항하는 것은 정당하다. 여기서는 누구나 총을 들고 다니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총을 꺼낸다. 나는 총을 애호한다고 해서 이곳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드라마 전체에는 그것을 용납하게끔 하는 그런 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나는 그게 몹시 좋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할란 카운티는 미국 켄터키 주에 있는데 켄터키 주는 미국에서도 가난하기로 손꼽히는 주의 하나다. 주의 주요 산업은 농업이며 또한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탄광이 이곳에 위치해 있다. 엔하위키의 설명을 가져와 보자. "미국인들이 켄터키에 대해서 가지는 이미지는 그야말로 시골 촌동네 정도. 도회적, 세련됨, 날렵함, 신경질적이고 예민함 등등의 도시의 이미지와 정확히 반대된다고 보면 대략 정확하다 … 켄터키는 전통적인 남부계열 주로서, 미국인들에게 지명도가 높은 시골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도시에서는 떨어진 곳, 공권력으로부터 벗어난 곳이다. 여기에서 정의란 국가에 있지 않다.



정의를 실현하는 당당한 개인은 이 드라마 전체에 흐르고 있다. 만약 누군가가 길을 가는 어린 아이에게 총을 겨누고 가진 돈을 다 내놓으라고 말한다 해도, 그 아이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damm, 지금 당신이 내 돈을 털어가려고 하는군요" 딱 이런 느낌이다. 지극히 자연스럽게, 돌려 놓고 보면 어딘가 낯설기도 하고. 그대로 놓고 보면 대단히 쿨내가 난다. 그게 이 드라마의 매력이다.





 


     





















  1. 동양이라는 용어가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뒤에 서양이라는 표현도 나오는데 동양과 서양은 중국을 중심으로한 세계와 그리스로마 문명을 바탕으로 한 서유럽 세계를 지칭하고자 사용한 것이다. 고대 중국법에 대한 나의 지식의 대부분은 학부 시절 수강 과목의 교재인 김택민, <동양법의 일반원칙>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그냥 이걸 그대로 사용했다. [본문으로]
  2. 전근대 중국과 한국에서도 치안을 담당하는 기구는 존재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근대적인 치안유지기관과 동격으로 놓을 수는 없다. 기회가 된다면 이 문제는 나중에 다루겠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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