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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TV Series

저스티스(Justice, 2006)

by Mr. Trollope 2013. 10. 5.





"제가 늘 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만약 제대로 된 변호사를 구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세계 최고의 법률 시스템을 경험하게 되실 겁니다."




이 드라마는 꽤 잘 만든 드라마이기는 하지만 별로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내 생각에 그 이유는 



먼저 드라마는 TNT&G라는 법률회사를 무대로 전개되는데, 이들은 주로 TV에서 주목하는 사건, 돈이 될만한 사건을 맡는다. 그들의 변호 서비스를 받는 고객들은 대부분 부자인 경우가 많고 행여 가난한 경우에는 돈이 나올 구석이 있거나 변호사와 안면이 있는 경우이다. 우리는 부자만 받는다 라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고객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또한 그들은 잘 차려입고 말쑥하며 사회 엘리트임을 드러낸다. 그들의 변호는 화려하고, 체계적이며 그래서 무척 "비싸" 보인다.  "세계 최고의 법률 시스템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제대로 된 변호사"는 너희들을 위해 일해주지 않는다는 것.


또한 이들은 대개 형사 사건을 담당하는데 형사 피고인 또는 피의자를 의뢰인으로 받아 그들을 "무죄"로 풀어주는 것이 일이다. 내가 알기에 형사사건 변호사란 것은 미국인들이 꽤 싫어하는 집단이다.[각주:1]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형사 피고인이 풀려나고 사건이 미결로 돌아가는건 상당히 거슬리는 일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각 에피소드가 끝나고 "실제 사건이 어떻게 해서 발생했는지를 보여주는 진실"이 나온다. 피고인이 무죄라면, 다른 범죄인이 아직 잡히지 않은 것이다. 피고인이 유죄라면, 범죄자가 좋은 변호사의 도움으로 멀쩡하게 풀려났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무척 유능하다. 1시즌은 모두 1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많은 경우에 이들이 승소하고, 또 그들 중 상당수가 "유죄"다. 그런데도 그들은 풀려난다. 이들은 미디어를 잘 알고, 변호인단을 어떻게 조작할 것인가에 능숙하고, 법정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잘 안다. 그들은 "정의"와 "원칙"에 의해 움직인다고 믿고 있는 사법체계를 어떻게 주무를지 아는 사람들이다. 그러면서도 응당 죄값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풀어주고 나서 "이들은 '무죄'가 아닙니다. 100% '결백'합니다" 란 소리나 하고 있다. 이것을 정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드라마가 한 시즌 만에 캔슬되었다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드라마 자체는 무척 재미있다.


미국의 사법체계는 현재까지, 그리고 지구 상에서 가장 우수하고 가장 유능한 것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그것이 완벽하지는 않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바로 그 미국에서조차 원칙상으로는 백인 또는 흑인, 부자 또는 빈민이 모두 법 앞에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차별적인 대우가 제공되는 것이 현실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이것을 미국에서의 이중적인 사법체계라고 한다. 국가가 모든 시민들에게 최대한의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안전이라는 측면에서 과도한 비용이 발생하고 그런 권리를 부정하는 것은 또한 자유라는 측면에서 과도한 비용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미국은 두 가지를 모두 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에게 권리를 부여하지만 흑인과 빈민들에게는 체계적으로 그것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미국보다 현실적으로 못한 우리는 어쩌란 말이냐. 


대한민국 사법행정은 그 깃털이라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지만, 그리고 법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에 가까운 사람이지만, 나는 어쨌든 - 국가의 수많은 현실에 대한 강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 나는 이 나라가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이 나라의 국가 행정과 사법 시스템에 의한 정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범생이에 쭈구리의 삶을 살았고 그래서 늘 길을 가다가 경찰을 보면 안심할 수 있었고 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 때문인 것 같다. 내가 대학원에 와서 공공행정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이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때문에 나에게 있어서, 정의란 것은 법에 의해 구체화되었을 때 달성될 수 있는 것이고 또 그러기 위해서 사법적극주의가 필요하다는 강력한 믿음을 갖고 있다.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5화  "Wrongful Death"이다. 테마파크에서 딸과 함께 놀이기구를 타던 한 여인이 난간에 머리를 부딪쳐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TNT&G는 유족이 된 딸을 도와 테마파크를 상대로 소송을 벌인다. 소송인의 권익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이고 과감한 노력을 마다않는 변호사, 이익을 위해 고객의 안전에는 눈을 감은 회사 CEO, 신랄한 대사와 신박한 화면 구성. 그리고 만족스러운 마지막까지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이 풀패키지로 들어가 있다. "정의"를 말한다고 한다면, 바로 이래야지 하고 보여주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13개 에피소드인데 이런 에피소드는 많지 않다. 


다른 에피소드 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배를 타고 가던 3명 중 한명이 바다에 빠져 죽는 사고가 발생한다. 남은 둘이 피고가 되어 재판을 받게 되는데, TNT&G가 각각을 의뢰인으로 받아 결국엔 둘 다 무죄로 풀려나는 사건이다. 변호사 중 한명은 (그는 피고가 무죄일까 라는 물음에 집착하는 쪽이다)  풀려 걸어 나가는 피고를 보면서 자신이 정말 옳은 일을 했는가 하는 의구심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다른 변호사(그는 피고가 무죄건 아니건 개의치 않는다) 에게 물었다. 


"정말 저 두 사람이 무죄라고 생각하세요?" 


다른 변호사의 대답 


"3명이 같은 배에 타고 있다가 1명이 죽었다면, 그건 분명 둘 중 한명이 범인이거나 아니면 두 사람이 공범인거야" 






이 드라마의 오프닝. "100% 결백합니다!"로 시작해서 "제가 늘 말하지만..."으로 끝난다. 배경음악은 "Lawyers, Guns & Money"인데, 가사를 드라마의 내용과 연결지어 생각하면 무척 재미있는 부분이다. 








  1. 예외라면 프랙티스(Practice) 정도랄까. 하지만 이 드라마는 무척 달라서 분위기가 꽤나 헝그리하다. 무죄인 사람들을 구해주기 위해 비싼 로펌을 포기한 변호사들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