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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TV Series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 2014-present)

by Mr. Trollope 2014. 6. 23.

 

 

실리콘밸리에 거주하는 사는 6명의 청년들이 "피리부는 사나이(Pied Piper)"라는 벤처 기업을 창업하며 겪게 되는 이야기다. 현실을 그대로 복제해내기로 유명한 HBO의 드라마 답게 놀라운 리얼리티가 일품이다. 어떻게 보면 <빅뱅이론>과도 유사한데 IT 공돌이들의 모습을 다루었다는 점, 남자들로만 이루어진 그룹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또한 <빅뱅이론>에서 주인공 그룹의 너드(Nerd) 문화가 페니와의 만남 등을 기회로 점점 사회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사회과를 보여준 것과 비슷하게도, <실리콘밸리>은 코드만 짜면 그만인 '인큐베이터'로부터 벗어나 기업과 시장으로 이루어진 냉혹한 현실사회로 진입하는 이야기다. 

 

두 드라마의 주인공 그룹은 모두 특출나게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 4명 중 2명의 IQ를 합하면 360이 된다던가 직관적 기억력(Photographic memory라고도 하는 그 것)을 가진 친구라든가. 아니면 두 억만장자가 자신의 알고리즘을 놓고 경쟁하는 상황에 처하질 않나 친구들이 논쟁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기존의 이론적 한계점을 두배나 뛰어넘는 새로운 알고리즘을 '하루만에' 만들어내질 않나. (누구 이런 친구 있는 사람?) 여러 모로 비범한 인물이다. <빅뱅이론>이나 <실리콘밸리>를 보면서 '이건 우리의 이야기야' 하고 공감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망상에서 깨어나라고 한대 때려주고 싶다. 전혀 공감할 수 없는 것인데도. 마치 <상속자들>을 보면서 연애 이야기에 공감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빅뱅이론>과 <실리콘밸리> 사이 이러한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실리콘밸리>는 <빅뱅이론>과는 명백하게도 다른 틀에서 만들어졌다. 무엇보다도 <빅뱅이론>에는 없는 현실이 <실리콘밸리>에는 있다.  <빅뱅이론>은 비현실적인 배경, 전개, 결과가 지배하는 세계다. <실리콘밸리>에서는 그렇지 않다. <빅뱅이론>이 크립톤 행성에 사는 슈퍼맨의 이야기라면 <실리콘밸리>는 슈퍼맨을 데려다가 지구로 옮겨다 놓았다. 즉, 이건 지구의 태양, 중력,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헤쳐나가야 하는 환경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도, 사건도 아니라, 이 드라마의 제목, "실리콘밸리"란 말이다. 

 

실리콘밸리의 풍경은 정말이지 생생하다 못해 노골적이다. 드라마의 작가가 실리콘밸리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하는데 그게 결정적인 이유일 것 같다. 수백만 달러가 종횡무진하데 돈벼락을 한번 맞아보겠다고 찾아온 사람들. 자전거 회의나 자율적 퇴사제도와,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중구난방인 기형적인 회사 구조. 빠르게, 성과를 좇아 검증되지 않은 시도를 하다가 개박살이 나거나 심지어 쪽박을 차고 거지가 되는 벤처 기업들. 최첨단 과학을 한다면서 답을 얻겠다고 '영적 탐험(Vision quest)'을 떠난다거나 사이비 종교지도자의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속아 수십만 달러의 돈을 낭비한다거나. 1,200만 달러짜리 프로젝트, 2,000만 달러짜리 프로젝트가 펑펑 쏟아져 나오지만 (주인공의 프로젝트도 원래는 1,000만 달러짜리 계획이 될 뻔했다) 그 돈을 받았지만 제대로 된 사업으로 추진할 능력이 없는 '어린애들'에 의해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르고 허공에 사라지는 막대한 돈. <실리콘 밸리>란 이런 드라마다. 

 

 

 

시즌 1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벤처 회사 '굴리빕'을 보자. 이들이 바로 그런 어린애들이다. 이 회사는 2억 달러짜리의 유망한 기업이고 작중에서는 오바마 대통령도 만날 정도였다. 물론 이들은 성공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상대해야 하는 시장, 자신들이 사는 사회를 이해하지 못한, 인큐베이터에서 양육된 물고기일 뿐이다. 그들이 여는 파티에서는 사람들이 즐겁지 않고 (남/녀가 따로 놀고, 가수와 관객이 따로 놀며, 게스트가 뭘 원하든 신경도 쓰지 않는다) 참여자들은 호응이 없는데도 저들끼리만 신나서 떠든다. 관객들은 심드렁한데도 이들은 무대 위에 올라와서 "통합 멀티 플래폼 기능성"을 사랑한다는 소리나 지껄인다. 이들은 개빈 벨슨이 비웃었던 것과 같이, "시장을 모른다"는 그런 부류다. 어디까지나 단순한 기술자일 뿐. 일순간 엄청난 돈을 손에 쥐었지만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계속해서 어떻게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결국 시즌 후반부에 이들은 사업이 망해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떠도는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그들의 모습은 인큐베이터에 살았던 때의 주인공과 똑같다. 그들의 현재는 만약 주인공이 1,000만 달러에 자신들의 기술을 팔았다면 맞이하게 되었을 미래였다.

 

 

 

 

 

  

 

주인공 그룹은 기술을 팔고 다시 인큐베이터로 들어가는 대신 창업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코드를 짜고 하는 등의 일에는 도가 텄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사업 계획을 설명하는데는 어려움을 겪던 아이들이, 지원받은 거액의 돈을 은행에 갖고 가서 계좌에 입금하는 것도 어려워 하는 그런 애들이 시장에 나왔다. 회사를 창업하면서, 왜 회사의 주소지를 델라웨어 주로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그런 아이들이 말이다.(미국의 세금제도 때문이다)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으면서 눈뜬 장님처럼 다가오는 대학, 기업, 눈먼 투자자들의 달콤한 제안을 물리치고, "너희들에게 수업계획표 따위는 주지 않을 것"이라는 말하는 피터 그레고리와 같은 Visionary의 도움을 받아 이 철부지들은 세상과 부딪치기로 결심한다. 

 

작중 억만장자 사업가로 나오는 피터 그레고리는 주인공 일행이 "피리부는 사나이"를 런칭하는 것의 동업자이면서 그들의 투자 파트너이면서도 일종의 스승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폐증(?)이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캐치해내고, 지극히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업 가능성을 찾아낸다. 피터 그레고리가 얼마나 뛰어난 통찰력을 갖고 있는지, 인간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인간'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위에서 '굴리빕'이 여는 파티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따로 놀고, 초대받은 가수는 아무런 흥을 느끼지 못하며, 파티의 호스트는 손님과 상관업이 자기들만 아는 언어로 떠들어댔다. 피터 그레고리가 여는 파티는 이것과 다르다. 배우를 고용해서 손님들과 대화를 하고 호응을 해주게끔 한다. (남자 손님에게는 여자 배우를, 여자 손님에게는 남자 배우를 붙인다) 유명 가수를 불러 (정작 본인은 그 가수가 누군지 잘 모른다) 관객들이 즐길 수 있게 하고 무대에 올라서는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와 같은 짧은 정보만 주고 곧바로 퇴장했다. 자신이 상대하는 고객이 뭘 원하는지 신경을 쓰고 있고 또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뜻이다. 

 

또 한가지 그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장면. 작중 버거킹→참깨→매미로 연결되는 고리를 찾아내 6,800만 달러의 예상 수익을 이끌어내는 장면은 실로 경이롭다. 그의 라이벌 CEO 개빈 벨슨이 쓸데없이 싸구려 벽화를 50만 달러에 사느라 돈을 날려버리거나, 일본식 기업문화나 구글같은 기업의 기업문화를 베껴와서 그 껍데기를 유지하려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직원에게 연봉 60만 달러를 지불하는 모습과 대조된다. 아마 1,500만 달러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찾아가면 개빈 벨슨은 그 자리에서 돈을 인출해서 줬을 것이다. 반면 피터 그레고리는 먼저 수천만 달러의 수익을 만들어낸 내고 거기에서 돈을 나누어 주었다. (개빈 벨슨이 멍청하다는 뜻은 아니다. 사업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상품의 진면목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개빈 밸슨은 아마 피터 그레고리만큼이나 유능한 사업가이다)

 

이 드라마가 사실적으로 현실을 그려냈다는 말이 이 드라마의 모든 것이 사실이다란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곳에서는 사실과 어긋나는 수많은 설정이 곳곳에 감추어져 있다. 예를 들어 작중 중요한 설정의 하나로 등장하는 와이즈먼 점수(Weissman score)가 그렇다. 무손실 압축률을 측정하는 점수로 주인공이 경쟁자 훌리와의 경쟁에서 승리했는지 패배했는지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도구이다. 이건 현실에 없는 개념이다. 또한 참깨의 최대 생산국이 미얀마, 브라질, 인도네시아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미얀마, 인도, 중국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실리콘밸리를 경험한 적이 없다. 당연히, 그곳의 실상이 어떤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여기에서 슈퍼맨이 실제 존재하는지 존재하는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슈퍼맨이 존재한다'와 슈퍼맨이 '실제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다'는 전혀 다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 드라마는 같은 HBO의  <안투라지(Entourage)>를 떠오르게 한다. 시작부터 <빅뱅이론>을 언급하고 시작했지만, 사실 이 드라마는 <빅뱅이론>보다는 <안투라지>를 더 많이 닮았다고 말하고 싶다. 이건 두려움으로 가득한 낯선 세계(창업 시장/엔터테인먼트 시장)에 뛰어든 소년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재능은 있지만, 현실을 알지 못하고, 의욕은 높지만 절제하지 못하고 실수를 저지른다. 다만 이들 곁에는 이들에게 현명한 조언을 해주고 롤모델이 되어 줄 경험많은 조력자(피터 그레고리/아리 골드)가 존재한다.

슬프게도, 안투라지는, 리얼한 재생력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결국 소재가 고갈되었고 그 매력을 잃었다. 안투라지는 연예계에서 인물이 겪을 수 있는 소재는 제한될 수 밖에 없고 주인공 일행이 겪는 모험은 점점 특별해졌고 진부해졌다. 그 이야기는 더 이상 리얼하지 않다. 지구는 판도라 또는 아제로스와 같아졌고 슈퍼맨은 쫄쫄이 팬츠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드라마는 그렇게 침몰했다. 

 

 

반면, 실리콘밸리는 과연 어디까지 순항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실리콘밸리'의 이야기를 리얼하게 담아낼 수 있을까? 아직까지의 전망은 밝다. 메타크리틱 점수는 100점 만점에 84점, 로튼토마토 지수는 96%까지 찍었다. 부디 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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