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瀟湘館/우즈베키스탄(2007)

사마르칸트 ③ : 비비하님 모스크 주변

by Mr. Trollope 2015. 2. 20.


비비하님 모스크 Bibi-Khanym Mosque

1398년 델리의 약탈 이후 티무르는 전 이슬람 세계에서 웅장함과 장식에 있어 유례가 없는 모스크를 건설하기로 결심했다. 티무르의 바람을 실현시키기 위해 대부분 전쟁 포로였던 제국 내 최고의 장인들이 동원되었으며, 인도에서 데리고 온 95마리의 코끼리들이 대리석을 운반하였다.

비비하님 모스크는 높이가 35m이며 미나레트의 높이는 50m이다. 안뜰은 직사각형으로, 대리석으로 포장되었고, 모퉁이에는 미나레트가 서 있으며, 가장자리에는 400개의 대리석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400개의 둥근 지붕으로 이루어진 회랑이 있다. 안뜰의 남쪽과 북쪽에는 보조 모스크들이 있으며 동쪽에는 높이 40m에 달하는 정문이 위치해 있다. 그리고 건물들은 대리석 조각, 테라코타, 유약을 바른 모지이크, 청색-금색 프레스코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완공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모스크는 조금씩 붕괴해갔다. 그 이유는 아마도 부실한 기초공사, 당시의 건축 능력을 야심, 또는 지나친 성급함 등일 것이다. 후에 지진이 건물의 붕괴를 가속시켰다. 부하라의 아미르들은 건물의 일부를 떼어내서 건축자재로 사용하기도 했다. 챠르의 관리들은 이곳을 마구간과 면화 시장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소비에트 공화국이 들어선 이후에는 보존이 이루어졌으며, 1974년부터 복원이 시작되었다. 오늘날 세 모스크의 돔은 모두 다시 모습을 드러냈으며, 황토색 벽돌 위에 청록색 타일이 입혀졌다.

안뜰의 중앙에는 대리석으로 된 거대한 성서대가 있다. 한 때 이곳에는 1m^2 크리의 오스만 쿠란이 놓여 있었다. 이것은 7세기의 유물로 티무르가 이곳으로 가져왔던 것이며, 1875년에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옮겨졌다가 볼셰비키에 의해 다시 탸슈켄트로 반환되었다



비비하님 영묘 Bibi-Khanym Mausoleum

비비하님의 정문 건너편에는 비비하님 영묘가 있다. 영묘의 8각형 방 아래의 지하실에서는 세 구의 여성 시신이 발견되었다. 비비하님의 전설에 나오는 와비는 몽골 칸의 딸인 사라이 물크 하눔으로 알려져 있다.

▶ 비비하님의 전설 :
티무르가 북인도를 유린하는 동안 그가 가장 사랑했던 중국인 공주 비비하님은 티무르가 사마르칸트로 돌아왔을 때 그를 놀래켜주기 위해서 거대한 모스크의 건설을 명령하였다. 모스크의 다른 부분은 모두 완성되었으며 단지 아치 하나만이 완성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그녀가 건설감독에게 이유를 묻자 페르시아로부터 잡혀 온 이 젊은이는 자신이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했으며 그녀에게 키스를 부탁했다. 그녀는 거절하였지만 결국 이를 허락했다. 그러나 그의 열정은 왕비의 뺨에 흔적을 남겼다. 아치는 완성되었지만 티무르는 이 부정의 표시에 분노하였으며 비비하님을 미나레트 꼭대기에서 떨어뜨려 죽이게 했다. 그 이후로 티무르는 자신의 영토 안의 모든 여성들이 천으로 얼굴을 가릴 것을 명령하였다고 한다.





카즈렛 키르 모스크 Khazret Khyzr Mosque


바자르 반대쪽에 위치해 있다. Khyzr는 여행자들의 수호성인이다. 하지만 그는 40주 동안 연속해서 월요일에 namaz bamdad 기도를 행한 경건한 신자들에게만 나타난다고 한다. 이 전설상의 인물은 이슬람 이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 장소는 아마도 아랍인들이 도시에 최초의 모스크를 세우기 전에 고대 사원이 있었던 곳인듯 하다. 현재의 건물은 19세기 중반의 것이다. 아이완 아래에서는 바자르 너머 비비하님과 반대쪽의 샤흐이진다를 볼 수 있다.





샤흐이진다 Shah-i-Zinda


샤흐이진다는 영묘들이 몰려있는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의 역사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촌인 쿠삼 이븐 아바스(Kussam-ibn-Abbas)가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하는 소그디아나 지역을 개종시키기 위해 이곳에 도착했다고 전해지는 6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기도하는 동안에 조로아스터교도들이 그의 목을 베어버렸는데, 쿠삼은 자신의 머리를 들고 깊은 우물 속으로 들어갔으며 그는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쿠삼은 사마르칸트에 온 적이 없다. 아마도 이슬람 이전 시기부터 있었던 저승 세계를 다스린다는 왕의 신화를 이후에 아랍인들이 차용하여 샤흐이진다(‘살아있는 왕’이라는 뜻이다)에 대한 숭배를 만들어냈던 것 같다. 오늘날 남아 있는 영묘들은 대부분 티무르 왕조 시기에 세워진 것이다. 놀라운 것은 다른 영묘와 동일한 형태를 지닌 영묘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1434-1435년에 울르그 벡은 샤흐이진다를 마무리하기 위해 웅장한 정무능ㄹ 세웠다. 그 뒤에는 첫번째 초르탁(돔 구조로 된 통로)이 나타나며 그것은 Dalvet Kushbegi Madrassah(1813)와 19세기에 세워진 모스크로 이어진다.


계단을 반쯤 올라가면 푸른색의 돔이 두 개 있는 Qazi Zade Rmi 영묘(1420-1425)가 보인다. Qazi Zade Rumi는 울르그 벡의 천문학 선생이지만, 실제로 영묘에 있는 시선은 여성이었으며, 그녀는 아마도 티무르의 유모인 것으로 추정된다.


두번째 초르탁을 통과하면 오른편에 Emir Hussein 영묘가, 왼편에는 Emir Zade 영묘(1386)가 나타난다. 아미르 후세인 영묘는 티무르의 장군이었던 후세인의 머머니의 이름을 따서 Tuglu-Tekin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아미르 자테 영묘는 알려지지 않은 아미르의 아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그 뒤로는 오른편에 Shirin Bika Aka 영묘(1385), 왼편에 Shadi Mulk Aka 영묘(1372)가 자리 잡고 있다. 샤디 물크 아카 영묘는 사마르칸트에 세워진 티무르 조 최초의 구조물이다. 이곳에는 티무르의 아름다운 질녀인 샤디 물크 아카가 묻혀있으며 이후에 티무르의 누나인 투르한 아카도 이곳에 합장되었다 시린 비카 아카 영묘는 티무르의 또 다른 누이를 위한 것으로 원래의 장식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는 진정한 모자이크 타일 제작이 사마르칸트에서 시작된 시기가 언제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입구는 전부 부조가 아니라 마졸리카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그 옆에는 15세기에 지어진 팔각형 영묘가 있다. 이것과 그 다음의 세 영묘들 – 건축가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Alim Nasafi 영묘(1385년 경), Ulug Sultan Begum 영묘(1385년 경), 완성되지 않은 Emir Burunduk 영묘(1390년 경) – 의 주인은 알려져 있지 않다.


마지막 초르탁은 쿠삼의 성소와 북쪽 안뜰을 잇는다. 왼쪽에는 티무르가 가장 사랑했던 부인은 Tuman Aka를 위해 지어진 모스크와 영묘(1404-1405)가 있다. 문 위쪽에는 ‘무덤은 하나의 문이며, 모든 사람들이 그곳에 들어간다’고 쓰여 있다. 길의 끝에는 이곳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건물인 Khodja Akhmad 영묘(1350년 경)가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티무르의 부인인 Kutlug Aka의 영묘(1361)가 있다.


초르탁 안에는 벽돌로 지어진 11세기의 미나레트의 일부가 보인다. 이것은 사마르칸트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몽골 침입 이전 시기의 구조물이다. 초르탁 동쪽에는 Kussam-ibn-Abbas 모스크(1460)와 11세기에 지어졌다가 1334년에 재건된 순례의 방(ziaratkhoma)이 있다. 출입구 옆에는 포도와 아라비아 문자를 표현한 목재 프리즈가 보인다. 지하에는 40일 간의 단식을 위한 방(chillyakhona)이 있다. 그리고 목재 격자창을 통해서 쿠삼의 무덤(1380년 경)이 있는 묘실(gurkhona)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