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瀟湘館/우즈베키스탄(2007)

사마르칸트 ④ : 구르 아미르 주변

by Mr. Trollope 2015. 2. 21.


구르 아미르 영묘 Guri Amir Mausoleum

‘구르’는 타지크어로 ‘무덤’이며, ‘아미르’는 ‘지배자’이므로, 구리 아미르는 ‘지배자의 무덤’이란 뜻이다. 이곳은 원래 티무르가 가장 아끼던 손자인 무함마드 술탄(Muhammad Sultan)이 페르시아 원정에서 전사하자, 1403-1404년에 그를 위해서 지은 무덤이다. 그러나 이후에 원래 샤흐리사브즈에 묻힐 예정이었던 티무르도 이곳에 안치되었으며, 이곳은 일종의 티무르 가의 가족 묘지가 되었다. 원래 이 자리에는 무함마드 술탄이 건립한 신학교와 khanaga가 있었는데 현재는 그 터만 찾아볼 수 있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7개의 묘석이 짙은 흑녹색 연옥으로 된 묘석을 둘러싸고 있다. 이것이 티무르의 묘속으로 울르그 벡이 자신의 할아버지를 위해서 몽골로부터 가져온 것이다. 그 위에는 티무르의 스승이었던 미르 사이드 바라카흐의 묘석이, 그로부터 시계 방향으로 무함마드 술탄, 울르그 벡, 샤루흐, 미란샤, 그리고 이름 없는 두 아이의 묘석이 차례차례 놓여 있다. 실제 시신은 이 묘석들이 아니라 4미터 아래 지하에 그와 같은 위치에 안치되어 있었다.

1941년 6월에 소련의 고고학 학술조사단은 구르 아미르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밝혀냈다. 조사 결과 가운데 위치한 시신이 절름발이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무덤의 주인이 티무르였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고 한다.

구리 아미르의 안뜰에는 아라베스크 문양이 조각된 거대한 대리석 덩이가 서있다. 이것이 티무르의 옥좌였다는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만, 실은 17세기부터 부하라의 아미르들이 즉위식 때 사용했던 것이다. 옆에 있는 수반은 티무르가 기도를 하기 전에 몸을 씻던 욕조라고도 하며, 또는 전사자들의 수를 가늠하기 위한 수단이라고도 한다. 이에 따르면 전쟁에 나가기 전 모든 병사들이 그 안에 석류 주스를 붓는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살아 돌아온 병사들이 주스를 한 잔씩 마시면 남은 주스의 양을 통해 전사자들의 수를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크 사라이 영묘 Ak Saray Mausoleum

‘아크 사라이’는 ‘하얀 궁전’이란 의미이다. 이 건물은 1470년 경에 지어졌으며 폐허가 되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우아함을 자랑한다. 내부에는 십자형 방과 아치가 있으며, 유약을 바른 모자이크와 군달 양식의 황금잎 장식이 되어 있다. 그리고 벽화들 중 일부가 아직 남아 있다. 고고학자들은 납골실에서 머리가 없는 해골을 발견하였는데, 이는 어쩌면 울르그 벡을 살해한 그의 아들 압달 라티프일지도 모른다.



루호보드 영묘 Rukhobod Mausoleum

티무르 시기에 지어졌으며 셰이흐 부르한 알딘 사가르지를 기리기 위한 곳이다. 이 신비로운 인물의 무덤으로 인해 이 영묘에는 ‘영혼의 거처’라는 뜻의 루호보드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프로시압 Afrosiab

기원전 6세기부터 서기 1220년 몽골의 칩입까지 사마르칸트는 외부의 침입을 겪은 뒤, 오늘날 도시의 북동부에 있는 아프로시압 언덕 요새에서 재생하는 패턴을 반복하였다. ‘아프로시압’이란 이름은 투란의 전설상의 왕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피라두시의 페르시아 서사시인 <샤 나마>에서 아프로시압은 용맹하며, 페르시아에 적대적인 왕으로 묘사된다.

소그드인들은 굽지 않은 벽돌로 지어진 성벽 뒤쪽에서 살았다. 현재 아프로시압 유적지 자체는 300에이커에 달한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북동부에 있는 통치자의 요새의 잔해이다.





울르그 벡 천문대 Ulughbek Observatory

아프로시압 북동부의 작은 언덕에는 1420년 경에 지어진 울르그 벡

천문대의 일부가 남아 있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사분의였다. 아프로시압 박물관과는 1km 떨어져 있으며

옆에는 천체 박물관이 있다.




아프로시압 박물관 Afrosiab Museum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아프로시압 남쪽 경사면에 있는 박물관에 있다.

아프로시압 벽화에 그려진 한국인 사절단의 모습

초기 자기, 은화, 검, 칼 등은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보여준다. 조로아스터 교와 관련 있는 것들로는 제단, 태양의 상징이 새겨져 있는 벽돌, 납골당이 있다. 물(아무다리야의 신격화)과 풍요의 여신인 아나히타의 테라코타 조각상(씨를 가득 밴 석류를 쥐고 있다)도 있는데 이는 지방의 신앙도 융성했음을 보여준다.


5세기 이후 실크로드의 번영은 보석, 화장품, 동전, 뼈로 조각한 체스 말

등에 잘 나타나있다. 하지만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7세기의 벽화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부식되고, 아랍 시기에 훼손되기도 했지만(우상 금지의 교리로 인해 그들은 벽화의 눈 부분을 긁어냈다), 이 그림들은 소그드 문화의 전성기 시절 숙련된 예술가들의 솜씨를 잘 보여준다. 한 벽화에서는 하얀 코끼리에 탄 공주가 수르한다리야로부터 사마르칸트의 통치자에게 까지 혼례 행진을 벌이는데, 그녀 뒤에는 말 탄 사내들, 낙타를 탄 사절들, 기마대들이 뒤따르고 있다. 중앙의 벽화는 보석을 두르고, 근사하게 차려입은 통치자가 외국 사절들로부터 선물을 받고 있다.



여기에는 비단을 든 중국인, 긴 머리의 투르크 인, 파미르 고원의 유목민, 머리를 땋은 한국인이 보인다. 마지막 그림은 중국인 공주가 배를 타고 왕궁으로 가고 있고, 물가에는 기사가 표범을 쫓고 있는 장면을 보여준다.





다니엘의 무덤 Tomb of Daniel

아프로시압 유적지 동부에, 시압 강 다리를 건너기 전에 있다. 박물관으로부터 걸어서 15분 거리이다. 건축물은 낮고, 긴 형태이며, 다섯 개의 돔이 놓여 있다. 그 안에는 18m에 달하는 석관이 있다. 관의 주인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 다니엘이라고 하며 티무르가 그의 유해를 이곳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다니엘의 시신은 매년 0.5인치 씩 자라고 있다고 한다. 강변에는 나무그늘 아래에 쾌적한 찻집들이 많이 위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