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瀟湘館/서안(2013)9

부용원(芙蓉园 또는 芙蓉苑) 자전거를 구입한 김에 찾아가게 된 부용원 이곳은 수대에 만들어진 황실의 정원 비스므리한 것인데 말하자면 우리나라 창경궁 비원 같은 곳이다. 당 태종이 이곳을 자신이 가장 총애하는 넷째 아들 이태(李泰)에게 주었고 이태가 사망한 뒤 당 고종이 태자에게 주었고 당 개원 연간에 황제의 정원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당 현종과 양귀비가 여기서 노닥거렸다는 뜻. 전에도 말했지만 이런 곳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궁정의 문화가 민간의 문화를 대표할 수 없고, 당대의 여성관이 중국 전통의 여성관을 대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의 경치가 끝내주게 아릅답다는 것 만큼은 인정해야겠다. 크기는 비록 이화원보다 작지만 아름다움은 결코 그 아래가 아닌 것 같다. 급하게 돌아다니느라 사진은 별로 건지지 못했다. 그래서 바이.. 2013. 3. 14.
내 서안 여행에서의 목표 "우리의 순수한 고고학자는 밀로의 비너스를 원하지 않는다. 비너스 상이 너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상이 우리에게 지나치게 많이 떠드는 반면,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며, 가치는 있지만 흥미는 없기 때문이다. 고고학자는 이 걸작의 독특성 뒤에 숨은, 그것이 그리스 조각사에 기여한 스타일이나 작업이나 美의 측면을 알아채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이 조각을 총애할 것이다." 2013. 3. 12.
상자묘(湘子廟) 서안에서 유명한 술집 거리인 덕복항(德福港)은 성 남문 근처에 있는 상자묘가(湘子廟街)에 위치해 있다. 이 거리의 이름은 바로 상자묘(湘子廟)라는 도관에서 나온 것으로 이곳이 전진교 일맥도(一脈道)의 본산이다. 상자묘(湘子廟)는 송대에 만들어졌는데, 바로 당대의 유명한 시인인 한유(韓逾)의 질손(姪孫)인 한상자(韓湘子)가 여기에서 도를 닦아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한상자는 한유가 일을 하던 관서의 내원에서 살았는데 나중에 지하에 굴을 파고 그 속에서 연공을 했다고 하며 이를 상자동(湘子洞)이라고 했다. 그래서 대략 30년 전 문화대혁명 시기에 곳곳에 땅꿀을 파다가 이곳에서 지하암실을 발견하자 사람들이 이게 바로 상자동이라고 했다. 나중에 송대에 와서 그를 모시는 사묘를 만들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내려오게 .. 2013. 3. 10.
서안 여행 일기 예전에도 블로그에다가 몇번 적은 것 같긴 한데,난 여행을 싫어한다. 그때는 뭐라고 썼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난 별로 여행을 다니지 않았다. 국내건 국외건. 하지만 이곳에서 살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은, 방안에서 칭다오 맥주를 마시면서 인터넷 게시판에서 노닥거리는 일이 아니면 밖을 돌아다니는 것 밖에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동안은 서안 구경에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다. 놀면 뭐하나. 소고기 사먹겠지. 아니 남는 시간에 서안 이야기나 해 보려고 한다. 여행은, 여행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행위가 아니다. 여행자는 잘 통제된 계획과 안전하게 보장된 거리를 갖고 여행지를 대한다. 여행자는 자신이 "낯선" 곳에서 이색적인 즐거움을 찾는다고 생각하지만. 소수의 여행자를 제.. 2013. 3.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