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台想昭明

고연전 그리고 일상

by Mr. Trollope 2010. 9. 27.

1. 
고연전 기간이다. 나의 1학년 시절은 그닥 생산적이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고연전은 내게 가장 즐거운 기억이었다. 혹자는 말한다. 집단의 광기에 휩쓸리는 것이 불편하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 사람은 한번도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러 가본 적이 없단 말인가? 이것도 비슷하다. 이것은 열정이고 환희이다. 경쟁하는 두 대상 중에 한가지에 애정을 쏟고 그들이 승리하기를 바란다. 선수와 나의 정신이 일치하는 느낌, 경기를 하는 사람과 응원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두 '우리'로 맺어져 있다는 감각. 환희와 열정, 그것은 경기장을 함성으로 뒤덮는 것이고 모두에게 희열을 주는 것이다. 게다가 가장 좋은 것은 그들도 우리를 사랑한다는 점이다. 야구로 예를 들어보자. LG가 이겼다고 해서, 두산이 이겼다고 해서, 관중석에서 뛰쳐나와 필드를 가로지른다고 해서 선수들이 너를 반겨주지는 않는다. 두산은 두산일 뿐이고 롯데는 롯데, 너는 그냥 너다. 하지만 학교는, 그것이 너 자신이 되고 네가 곧 학교 전체가 된다. 선수들은 너를 위해 안아줄 것이다.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응원가를 불러줄 것이고, 함께 승리의 기쁨을 나누는 것을 허락할 것이다. 이것은 환상적인 경험이다. 폭풍과도 같은 이러한 감정 속에 파묻혀보지 않고서는 그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겠지. 


2.
요즘 들어서 느끼는 생각인데, 나에게는 '사내스러움'이 부족하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경기를 일으킬지도 몰라서 하는 말인데, 그러니까 사회에서 말하는 '남성성' 그것 말이다. 남자가 남자답고 여자가 여자다워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또한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 존재한다는 말도 아니다. 단지 편의상 쓰겠다. 젠더를 피해 정의하느라 여기서 말을 늘리고 싶지는 않으니까.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대부분은 두가지를 함께 배우면서 자란다. 남성성과 여성성. 사람들이 두가지를 갖고 살지만 한가지만 발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게 편하니까. 사회 속에서 적응하기 편하니까. 남자가 남성성을 여자가 여성을 반드시 갖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느 한쪽은 가져야 한다. 그래야 적응할 수 있다. 마초스러운 남자와 여리여리한 남자 모두, 조신한 숙녀같은 여자와 털털하고 스스럼없는 여자 모두. 나는 어디에 속할까. 요즘 들어 느끼는 생각인데 아마도 이건 나의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상이 없었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나에게 아버지가 없었다는 말도, 내가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단지 보고 배울 수 있는 롤모델로서의 아버지가 없었다는 뜻이다. 이제와서 말하긴 늦은건가 싶긴 하지만 아마 내가 스스로 배워야할 것 같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3.
트위터에 가입은 했지만 잘 쓰지는 않는다. 가끔 트윗을 하긴 하지만. 예전에 팔로잉을 맺어 놓은 사람이 대충 100명 안쪽으로 있는데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사람이 3명이 있다. 이 세명은 요즘에도 넘치는 정력으로 트윗라인을 쌓아나가고 있는데, 진중권, 김주연, 박은지가 그들이다. 진중권은 다 아는 사람이고, 박은지는 기상 캐스터, 김주연은 CF 모델이었던 사람이다. 진중권은 내가 좋아하기도 하고, 그의 트윗은 늘 즐겁게 읽고 있는데, 나머지 2명은 좀 다르다. 이 둘은 맹렬한 기세로 셀카를 찍어서 트위터에 올려댄다. 매일. 참으로 놀라운 모습이다. 무시무시하게 올라오는 셀카 사진을 보노라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두 미인들의 어마어마한 셀카 사진들. 신기하기도 하고 묘하기도 하고. 여성이라는 점이, 미인이라는 점이, 젊다는 점이 그들의 취미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마 그 밖의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