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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 / 바삼 티비 / 지와 사랑 / 2013

by Mr. Trollope 2013. 3. 18.


한국을 뜨기 전에 마지막으로 읽었던 책이다. 도서관을 어슬렁거리다가 우연히 집었는데 의외로 괜찮아서 너무 만족스러웠다.


꽤 두꺼운 책이고 따라가기 힘들기도 하지만 총론이라고 할 수 있는 몇개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6개의 주제를 중심으로 각론을 풀어놓은 것이므로 교양 수준에서 읽을 사람이라면 굳이 책의 두께에 겁먹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슬람교, 이슬람 문명이란 대체 어떤 존재인가. 21세기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 가장 상징성이 큰 사건이 뭐냐고 묻는다면 누구나 주저없이 2011년 9월 11일에 있었던 WTC 테러 사건을 꼽을 것이다. 그 이후로 이슬람은 갑자기, 우리 사회에, 적대적인 모습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마천루를 지나 거대한 비행체가 빌딜을 들이받는 모습. 이 모습을 전세계가 지켜봤고 우리는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고 느꼈다. 그 전까지만해도 이슬람 문명은 우리에게 거대한 개척시장으로서의 중동이라던가 엄청난 석유 부존국으로서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슬람 문명은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한손에는 칼, 한손에는 코란"이란 이미지가 되었다. "문명의 충돌"로서. 21세기 우리에게 있어서, 이슬람교는, 테러리스트의 신앙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시각에 반대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이슬람교는 평화적인 종교이며 이슬람교와 이슬람주의를 구분해서 바라보아야 한다. 둘째, 테러리즘의 문제는 급진적인 이슬람주의자와 평화적인 이슬람주의자의 구분선에 있지 않다. 



첫째, 이슬람교와 이슬람주의는 다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슬람교와 종교를 정치의 구실로 삼는 이슬람주의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이슬람교를 정치적으로 해석하여 이슬람교는 신정일치의 전통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마땅히 이슬람 율법에 의해 정치를 구현해야 한다고 믿는 자들이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이슬람교는 하나의 신앙이자 도덕률인 반면에, 이슬람주의는 국가질서를 위한 정치적 수단에 불과하다. 이슬람교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이슬람주의자들의 주장은 유일신 알라의 뜻을 구현하는 정치 질서 - 이슬람법(샤리아)에 바탕을 둔 신정(神政)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지만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 본문에 샤리아는 단 한 차례 나올 뿐이며, 샤리아는 ‘물가로 이어지는 길’이라는 뜻으로 도덕적으로 바른 길을 의미할 뿐이다. 결국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이슬람주의는 이슬람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이데올로기이며, 이슬람주의자에 의해 '만들어진 전통'에 불과하다. 이슬람교는 무슬림의 세계관과 생활양식을 규정하지만 국가 질서를 전제하지는 않는다. 반면에 이슬람주의는 정치적 주의주장이다. 저자는 이슬람교와 이슬람주의,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이슬람 세계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현대의 서양인들은 이슬람교와 기독교 문명의 '문명의 충돌'이라고 착각하게 된 것이다. 



둘째, 테러리즘은 급진적인 이슬람주의자와 평화적인 이슬람주의자의 구분선 위에 놓인 것이 아니다. 서방세계의 일부 정치인들은 이슬람교가 호전적인 종교가 아니라 평화적인 종교임을 이해하는데까지는 성공하였지만 이슬람주의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급진적인 이슬람주의자를 공격하기 위해 평화적인 이슬람주의자와 손을 잡는 잘못된 정책을 펴고 있다. 저자는 이에 반대한다. 이슬람주의자는 궁극적으로 신정질서를 이 땅 위에 세우려고 하며 그들의 수단이 평화적이건 전투적이건 관계없이 결국 그들의 방식은 이슬람교를 정치 이데올로기로 활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자면 테러리즘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급진적/평화적 이슬람주의자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급진적/평화적 이슬람주의자는 결국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서 상호 공생관계, 또는 자웅일체와 같은 관계이기 때문이다. 무기를 들고 있건 들고 있지 않건 결국 그들의 목적은 동일하다. 동일한 목적에 서로 다른 접근을 사용하고 있는 것 뿐이기 때문에, 이슬람주의가 살아남기만 한다면 평화적 이슬람주의자라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급진적 이슬람주의자로 변신할 수 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람들은 언제든지, 기꺼이 기존의 수단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 법이다. 이래서는 테러리즘이 전혀 종식될 수 없다. 진정으로 테러리즘을 종식시키고자 한다면 이슬람교를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이슬람주의자와 순수 이슬람교를 분리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터키와 이란을 대하는 미국의 외교 정책의 실패를 예로 들며 실패한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주장한다.




 머리말에서 상당히 공을 들여 이 책의 진정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이를 미루어봐서 저자는 - 사이드가 그러했던 것처럼 - 이슬람 내부에서 심각한 공격을 받고 있는 것 같다. 내 보기에 이러한 사실은 이 책의 가치를 증명해주는 것이다. 또한 내가 보기에 이 책은 구성이 무척 탄탄하고 주장은 무척 단단한 바탕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저자 바삼 티비는 이슬람 문화를 주제로 40년 동안을 연구하였으며 이 책은 그가 은퇴를 앞두고 자신의 모든 역량을 집대성한 최후의 저작이다. 그는 예일 대학의 초청을 받아 이 책을 집필했고, 탈고한 후에는 두 차례에 걸쳐서 전문가 여덟 명이 검토하고 네 차례의 편집과정을 거쳐 최종 통과되었다. 예일 대학 출판부는 다시 세 명의 검토자를 선정하여 몇 차례의 원고를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 책은 열한 명의 전문가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까다로운 검토과정을 통과했으므로 내용의 신뢰성에는 문제가 없다.   



중동과 이슬람 세계를 더욱 잘 이해하고 싶은 사람, 21세기에 가장 HOT한 주제인 이슬람 문명을 정복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