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view/Book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 / 필립 쿤 / 이영옥 옮김 / 2004

by Mr. Trollope 2013. 3. 30.





좋은 역사책이란게 별거 아니다. 자료가 말할 수 있는 곳까지 말하고, 자료가 말할 수 없는 곳은 말하지 않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정말 좋은 역사책이다. 현재까지 한국에 출판된 역사책 중에서 가장 좋다고 할 수 있을만큼. 이 책의 가치는 여러가지로 말할 수 있다. 자료가 풍부하다. (18세기 사회상황에 대해 매우 폭넓은 연구가 있다) 그리고 분석이 날카롭다. (근세 중국의 황제지배체제와 관료제에 대해 매우 날카롭고 예리하게 파고들고 있다) 그리고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의 분석은 과거에 언젠가 그가 제시하였던 중국의 시민사회에 대한 그의 가설과도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연결될 가능성이 보인다) 이 세가지 중 어느 방면으로 활용하더라도 유용하다. 실제로 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쓴 (것으로 추측되는, 아니면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되는) 다른 연구도 많이 봤다.

영혼을 훔치는 사람. 은 누군가 사람들의 영혼을 훔친다고는 소문을 믿은 18세기의 공포와 혼란에 관한 이야기이다. 1768년, 요술사들이 사람들의 '변발'을 잘라서 영혼을 훔치고 있으며, 영혼을 도둑맞은 사람은 필시 목숨을 잃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청 건륭제는 이 사건을 명백히 조사해서 다스릴 것을 명령하였다. 하지만 이 '어처구니 없는 사건'은 결국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관료들은 이 문제를 적당히 수습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건륭제는 그런 관료들의 태도에 분노했고 관료집단 전체를 향해 건륭제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건륭제의 입장과 민중의 입장, 관료의 입장은 과연 무엇이 달랐는가. 또 그것은 어떤 점을 시사하는가? 우리가 18세기 또는 근세 중국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또 그리고 무엇을 오해하고 있는가. 필립 쿤은 소문이 퍼지고 공포가 되는 상황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혹은 이 문제를 들여다보는 각자의 시각을 매우 예리하게 들여다보았다. 여기가 바로 이 책이 진정으로 멋진 부분이다.

역사학이라는 걸 구성하는건 대체 무엇인가? 무엇이 정말 과거를 이야기한다고 담보하게 하는 걸까? 오랫동안 역사학자들은 이 문제를 연구했다. 비록 역사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아니더라도, 실제 연구에 뛰어들고 있는 연구자들도 늘 이 문제는 떼어놓을 수 없는 문제였다. 단지 사료를 정확하게 옮겨놓기만 하면 역사학자의 할 일은 끝나는 것인가? 혹자는 말한다. 단단한 사료에 입각에서 굳건하게 사실을 쌓아올리는 일이 역사학자의 일이라고. 하지만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 건축가의 일은 좋은 재료를 써서 집을 짓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집을 지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많은 학자들은 여기서 길이 나뉜다. 누군가는 여기에서 멈추고 누군가는 길을 떠난다. 이곳은 역사학자들에게 있어서 항구와도 같다. 앞을 볼 수 없는 바다로 나가는 사람 중에는 도중에 난파하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돌아와도 그들이 헛소리를 한다고, 근거도 없이 떠벌린다고 비웃음을 당하기 일쑤다. 혹자는 멋진 보물을 안고 돌아와 모두의 부러움을 산다. 하지만 그렇게 성공하는 사람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그래도 길을 나서야 한다고 믿는다. 단단한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고, 그 앞으로 나서서 누군가는 목숨을 잃더라도 그렇게 좌초한 잔해를 스승 삼아 누군가는 더 멀리 항해할 수 있다고 믿고. 그래도 나아가야 한다.

사료를 읽는 것에서 멈추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개 문제를 들여다볼 때, 사료의 입장에서 접근한다. 사료를 남기는 사람들이 문인, 사대부, (가끔은 황제도), 관료집단이라는 사실은 무시한다. 불확실한 가지를 제거하고 사료를 조합하고, 시간과 공간 순으로 정렬하는 것이다. 크로니컬하게. 하지만 이러한 접근의 문제는 자신의 시각이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는 점이다. 사료의 해석은 사가의 해석에서만 머무른다. 이 책의 멋진 점은 - 처음에 말한 좋은 역사책의 조건에 관련된 것인데 - 문제를 다각도에서 파고들었다는 점이다. 필립 쿤이 남긴 책을 읽으면서 (마치 신문기사를 읽는 것처럼) 그걸 이해하는건 쉽다. 이걸 사료 쪽에서 파고들어가는게 어려운거다. 그는 하나의 시각만 남은 사료를 해체해서, 시각이 없이 파편화된 자료와 결합해서 황제-관료-백성의 3가지 시각으로 재구성해냈다.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역사학자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황제는 이 문제를 통치의 결함으로 생각했다. 관료는 어처구니 없는 문제를 덮고 싶어했다. 백성들은 초자연적인 힘이 작용했다고 믿었다. 중요한건 황제와 관료 모두 이 요술이 존재한다는걸 믿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황제는 백성이 불안해하는데 이걸 관료들이 진정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오히려 이걸 어물쩡 넘어가려 한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관료들은 당혹스러운 임무에 맞닥뜨렸다는 사실에 난처해했고, 예측 가능한 절차와 임무와 역할의 분담, 문인-관료의 결합이라는 2000천년 역사를 가진 중국 관료제의 매커니즘에 따라 이 문제를 처리하고자 했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나는 여기에서 프로이센의 '관료군주'라는 개념을 가져와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역사학자들이라면 '황제'라는 단호한 개념을 이 순간에 해체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는 나침반(사료)이 없는 안개만이 자욱한 곳에서 마스트를 스스로 부러뜨리는 행동과 같기 때문이다. (뭍 위에서 그랬던 사람은 있었다) 이런 무모한 접근도 역시 확실한 경험과 자신감이 없으면 힘든 일이겠지만.




이건 보너스


"230여년 전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을 청조에 대한 모반으로 보고 대응하던 건륭제의 광기(?)를 약화시켜 잠재운 것은 관료들이었다. 예측 가능한 절차를 통해 일을 처리함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특징이 있는 관료들의 합리적 자세가 사건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건 인터넷에서 검색하다보니 나온건데... 이덕일씨는 책을 잘못 읽었다. 아무래도 시사문제에 연결시키려고 한 욕심이 컸던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