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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명나라와 원나라의 전쟁 1367-1389 (1) 산동전역

by Mr. Trollope 2013. 6. 25.



명나라와 원나라의 전쟁 (1367~1389) : 명나라가 건국되고 중국을 통일하기까지의 과정. 이 전쟁의 결과 중원 내 원나라의 세력 및 기타 원말 농민반란집단은 소멸되었다.

 

지정 27(1367) 주원장은 진우량과 장사성을 쓰러뜨리고 강남을 장악하였다. 그는 이제 남북 전방향으로 중국 전역을 장악할 계획을 세운다. 그는 먼저 서달을 대장군으로, 상우춘을 부장으로 삼아 중원의 원나라를 공격하게 한다. 남쪽으로는 탕화를 대장으로 하여 절동 지역의 방국진 세력을 공격하게 하였다. 호정서를 대장으로 하는 또 한 갈래의 군대는 복건을 공격하게 하였고, 양경 등은 광서를 점령하게 하였다. 지정 28(1368) 정월 주원장은 응천부, 현재의 남경에서 즉위식을 올리고 국호를 대명으로 정하며 연호를 홍무로 하였다. 하지만 아직 중국 전역이 그의 손에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1) 산동 전역 (1367.10~1368.2)

원나라는 산동 지역에 동평로, 동창로, 제녕로, 익도로, 제남로, 반양로 등을 설치하여 지배하였다. 산동지역의 총사령관은 산동동도선위사 보안불화로, 그는 익도에 주둔하여 각 로의 군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따라서 산동을 탈취하기 위해서는 익도를 점령해야만 했다. 이 작전을 위해 두개의 선택지가 고려되었다. 첫째는 강회에서 북으로 기주를 지나 곧장 익도로 향하는 길이다. 둘째는 서주에서 북쪽으로 제녕, 제남을 점령한 뒤 동쪽으로 전환하여 익도를 공격하는 방법이다


주원장은 서달을 총사령관으로, 상우춘을 부장으로 선택하고 두 갈래의 길을 동시에 진격하는 방침을 지시하였다. 이 계획을 위해 기주를 지키고 있던 원나라의 장수 왕선, 왕신 부자를 설득하여 항복시켰다. 114, 명나라 군대는 하비를 점령하고 본격적으로 양갈래로 나뉘어 진격을 시작하였다. 서쪽 루트는 장흥조가 이끌었으며 서주를 지나 북상하여 제녕과 동평을 점령하였다. 동쪽 루트는 서달과 상우춘이 이끄는 주력군으로 북쪽으로 곧장 익도를 향하였다. 1112일 항복하였던 왕선과 왕신 부자가 배반하였다. 서달은 기주를 공격, 왕선을 참수하였다. 기주 부근의 역주, 거주, 해주, 술양, 일조, 공유 등의 관리들이 찾아와 항복하였다. 1118일 주원장이 보낸 사신이 기주에 도착하여 서달에게 지시를 전하였다


만약에 익도를 점령하고자 한다면 정예를 뽑아 황하의 요충지를 점령하여 적의 원병을 차단하면 적을 깨뜨릴 수 있다. 만약 익도를 아직 점령하지 못했다면 마땅히 제녕, 제남을 점령해야 한다. 두 성이 함락된다면 익도와 산동의 세력은 의지할 곳이 없이 주머니 속에 든 물건을 꺼내는 것처럼 쉽게 떨어질 것이다.” 


서달은 즉시 황하의 요충지를 점령하게 하고 적의 구원군이 도착할 수 있는 길을 차단한 뒤 자신이 직접 대군을 이끌고 익도를 공격하였다. 1129, 익도가 함락되었고 대장 보안불화는 전사하였다. 서달은 승세를 타 수광, 임치창동, 고원 등을 점령하였다. 같은 때 서쪽 루트로 전진하던 장흥조 역시 연전연승을 거듭하여 125일 동평에 접근하였다. 동평을 지키던 마덕은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동아, 안산 등의 관리들이 모두 찾아와 항복하였고 병사 5만을 거두어들였다. 128일 제녕을 포위하였다. 원나라의 장수 진병직이 싸우지 않고 달아났고 제녕 역시 함락되었다. 동쪽 루트로 전진하던 서달의 군대는 익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127일 제남을 공격하였다. 원나라의 홀림태(忽林台). 첨동(詹同), 탈인첩목아(脫因帖木兒)는 군대를 이끌고 달아났고 제남 역시 싸우지 않고 명나라의 손에 들어갔다. 1222일에서 26일 사이 등주, 래양 등지가 계속해서 명나라의 군대에 의해 함락되었다. 홍무 원년 212, 상우춘이 이끄는 군대가 동창을 점령하였고 치평 등 지역의 관리들이 찾아와 항복하였다. 225일 서달이 이끄는 군대가 악안 등지를 점령하였다


이로써 산동지역은 명나라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