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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명나라와 원나라의 전쟁 1368 (3) 하북전역

by Mr. Trollope 2013. 11. 12.

명나라와 원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 중 3번째 단계에 해당하며 시간상으로는 명 홍무 원년(1368) 5월에서 8월까지에 이루어졌다. 이 전쟁의 결과 원나라의 수도는 함락되고 원이 멸망하였다.  



명의 군대가 산동과 하남을 점령하고 동관을 차지하자 원의 대도(북경)은 이미 고립무원으로 포위되는 상태가 되었다. 홍무 원년(1368) 5월 21일, 명 태조 주원장은 직접 변량(개봉)까지 올라와 여러 장수들과 함께 원의 수도를 빼앗을 계책을 의논하였다. 그 결과 정로대장군 서달이 내세운 원의 수도로 곧장 진격하자는 주장을 받아들이며 충분히 주의한 뒤 전진하도록 지시했다. “북쪽의 토지는 넓고 평평하여 예측불허한 전장이 많으므로 충분히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마땅히 정예를 가려 뽑아 선봉으로 앞세우고 수륙방면의 군사를 이끌고 그 뒤를 잇고 산동에서 군량을 얻도록 하라. 업鄴을 지나 한단邯鄲을 빼앗고 임청을 거쳐 북상하면 원의 수도까지는 곧장 닿을 수 있으니 좌우가 서로 구원할 수 없고 내외가 놀라 무너질 것이니 싸우지 않고도 빼앗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이 직접 만든 《征進陣圖》를 서달에게 주었다. 



6월 초, 서달은 전군을 하음河陰에 집결시켰다. 군량선은 제녕濟寧에서부터 출발하여 식량을 대게 했다. 7월 29일, 그는 주원장의 명령에 따라 도독동지 장흥조, 평장 한정, 도독부사 손흥조, 지휘 고현등과 함께 익도益都, 서주徐州, 제녕濟寧의 군대를 동창東昌에 집결시킨 다음 하남에서 올라오는 군대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윤7월 2일, 명의 군대는 변량을 출발하여 한 갈래의 군대는 파죽지세의 기세로 전진하여 위휘衛輝, 장덕彰德, 자주磁州, 한단邯鄲, 광평廣平을 점령했다. 7월 11일, 임청臨清에 도착하였으며 마침내 동창東昌에 결집한 군대와 합류하였다. 다시 명령을 내려 참정 부우덕傅友德으로 하여금 육로를 확보하게 하고 도독부사 고시로 하여금 수로를 확보하게 하였다. 마침내 7월 15일 수륙 양쪽으로 동시에 북상을 시작하였다. 



명의 군대가 덕주德州에 도착하였을 때 정로부장군 상우춘常遇春, 장흥조張興祖, 고현高顯, 모양毛驤, 정화程華의 군대와 합류하였다. 7월 22일 장호長蘆, 청주青州를 함락하였고 7월 23일 직고直沽(지금의 천진)에 도착하였다. 7월 25일 하서무河西務(지금의 천진시 무청현 동북쪽)에서 원나라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7월 25일 통주通州를 점령하였다. 원 순제 토곤 테무르는 형세가 이미 기울었음을 깨닫고 마침내 그 날 태자와 후비 등을 이끌고 건덕문을 통해 상도上都로 도주하였다. 8월 2일, 서달 등이 이끄는 명의 군대가 원의 대도(북경)을 함락시켰다. 서달은 자신이 직접 제화문齊化門의 문루에 올라 황족이면서 원 왕조 아래에서 감국을 지낸 회왕淮王테무르부카帖木兒不花와 우승상 장강백張康伯 등을 처형하고 아울러 왕자 6명 등을 사로잡았다. 이로써 원의 중원 통치는 종국을 맞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