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말 몽골인의 풍습을 기록한 『북로풍속(北虜風俗)』(일명 『이속기(夷俗記)』라는 책이 있다. 저자는 선부대동총독(宣府大同總督) 및 병부상서를 역임한 숙대향(肅大享)이고 1594년에 이 책을 저술했다. 그는 수십년 동안 명의 북쪽 변방 방위 및 몽골의 지배자와의 교섭 임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몽골의 사정에 정통하고 있던 사람 중 한명이었다. 책의 내용은 결혼, 출산, 전쟁, 시장 등 20개 항목에 걸쳐 있는데 그 중 흥미로운 내용 몇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결혼
남녀의 결혼은 쌍방의 집안이 결정한다. 예물은 소나 말 등의 가축을 선물하고 또한 직물 등도 선물한다. 그 수의 많고 적음은 그 집안의 빈부에 따른다. 혼약이 성립되면 남자는 여자의 집으로 가서 친구들을 초대하여 술자리를 열고 천지에 제사를 지낸다. 술자리가 끝나면 친구들은 돌아가지만, 저녁에 여자는 말을 타고 이웃집에 숨는다. 남자 또한 말을 타고 이를 쫓아가 잡는다. 그러나 때로는 쫓아가는 것이 수백 리에 달하여 하루나 이틀로 끝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붙잡은 뒤 여자의 집으로 돌아오면, (바야흐로) 신랑과 신부(가 된 두 사람)는 양의 뼈로 서로를 때리면서 천지에 예배를 올린다. 그 후 신랑의 속옷을 말총으로 단단히 묶으면 신부가 작은 칼로 이것을 끊는 것으로써 예식은 끝나게 된다. 그 후 신랑의 집으로 돌아가지만 신부는 붉은 옷을 차려입고 텐트 안으로 들어간다. 이 때 양 꼬리의 기름을 가지고 가서 아궁이를 향해 세 번 머리를 조아린 뒤 아궁이에 기름을 붓고 태운다. 그 후 신랑의 부모와 친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각자에게 옷 한 벌씩을 선물한다.
출산
아이가 태어나면 바로 가죽이나 벨트로 아이를 감싸고, 사흘이 지난 뒤 몸을 씻어준다. 씻어준 뒤 다시금 아이의 몸을 감싼다. 그 날 이웃과 친족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인다. 어머니는 아이를 낳고도 식사는 평상시와 같은 것을 먹고 찬 바람도 피하지 않는다. 태어난 아이 또한 마찬가지로 찬 바람을 피하지 않는다. 아이가 태어난 집은 문에 붉은 옷이나 허리에 차는 칼을 걸어서 경사의 표식으로 삼는다.
재산 상속
재산은 대체로 맏아들과 막내아들에게 많이 나누어준다. 만약 아들이 4명이라면 (전체를 여섯으로 나누어) 맏아들과 막내아들에게 각각 둘을 주고 가운데 두 아들에게 각각 하나를 준다. 혼약 중인 여자로서 아직 결혼하지 않았을 때에 부모가 죽으면 자기 몫의 재산을 가지고 시집갈 수 있다. 결혼한 여자는 아주 적은 액수만을 받았다.
매장
왕후가 죽었을 경우에는 관에 넣는다. 관에 생전의 옷, 갑주 등을 넣은 뒤 초원에 구덩이를 깊이 파고 묻는다. 또한 왕후가 죽은 날, 망자가 아끼던 하인, 첩, 좋은 말을 죽여서 순장한다. 복상(服喪)은 중국과 같은 3년상은 없다. 처자와 그 밖의 지배 하에 있던 부(部)의 추장들이 7일 동안 모자를 쓰지만 7일이 지나면 평소와 다름없이 한다. 다만 불교를 믿게 된 이후로는 순장이 없어지고, 망자가 가지고 있던 좋은 말, 옷, 갑주를 라마승에게 보시로 주었다.
농경과 수렵
오늘날(16세기) 몽골에서는 장성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농경이 행해지고 있다. 농기구로는 소나 쟁기가 이용된다. 작물로는 보리, 조, 콩, 기장이 있는데 이것들은 전래된 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들이다. 다만 오이, 표주박, 가지, 겨자, 파, 부추는 (명과 몽골이) 통교한 이래 재배되게 되었다. 다만 경작은 하늘에 달린 것이어서, 봄에 씨앗을 뿌려 가을에 거두지만 수확량은 적다. 가을바람이 불고 풀이 마를 무렵, 말은 튼튼해지고 가축은 살찌게 된다. 영주가 호령하면 엄청난 수의 유목민들이 모여들고, 기병 1천명과 말 1만 필이 뛰어다니면서 음산산맥에서 몰이사냥을 한다. 붙잡은 짐승들이 산처럼 쌓이는데 모두에게 똑같이 나누어준다. 다만 사수(射手)와 그를 도와준 이에게는 특별한 몫이 있다. 예를 들어 짐승 한 마리를 붙잡으면 그 가죽, 털, 발굽, 뿔은 활을 쏜 이가 가진다. 고기는 잘라서 똑같이 나누어준다.
음식물
육류를 먹는데 반쯤은 날것인 채로 먹는다. 그것은 굶주림을 견디게 하고 또한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육즙으로 죽을 끓이거나 차를 끓이거나 한다. 절구로 쌀을 찧고 맷돌로 가루로 만든다. 가루에 젖을 섞지만 그것을 끓여 조리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술은 대부분 젖으로 만든다. 독한 것은 몇잔만 마시면 취해버린다. 곡물도 먹지만 결국 육류가 주된 음식이다.
의복
의복의 귀천에 개의치 않고 모두 통소매 옷을 입고, 손목 부근에서 끈으로 묶어서 손가락 하나도 들어가지 않도록 한다.주먹은 항상 밖으로 내어놓는다. 추울 때에는 손을 움츠리고 소매를 내린다. 속옷은 대단히 작고 허리 부근에서 끈으로 묶는다.허리띠는 하지 않는다. 여자는 남자와 마찬가지로 바닥이 얇은 신발을 신는다. 그것은 말을 타는 데에 편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자라 하더라도 옷 두벌을 가지고서 갈아입거나 하지는 않는다. 새 옷도 터지기 전까지 계속 입는다. 옷이 터지더라도 수선하지 않는다. 아무리 깨끗한 옷이라도 하루 이틀만 입으면 때가 묻어서 더러워진다. 때가 묻어서 더러워져도 씻지 않는다. 단지 옷의 때를 씻지 않을 뿐만 아니라 평생 동안 얼굴도 씻지 않는다.
목축
가축은 소, 양, 개, 말, 낙타가 있다. 이것들에 애착을 가지는 것은 중국인이 논밭에 애착을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좋은 말 한 필을 보면 말 서너 필도 아까워하지 않고 바꾼다. 말은 가을이 되면 살진다. 이때 갑자기 말을 달리면 말은 3일 거리도 가지 못하고 죽어버린다. 단지 살이 쪘을 뿐이지 몸이 팽팽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은 말을 골라 훈련시키는 방법은 매일20~30리씩 말을 걷게 하여 땀이 조금 나는 것을 기다린 뒤, 앞다리를 묶어서 뛰어오르거나 걷어차거나 하지 못하도록 한다. 또한 재갈을 물려서 물을 마시거나 풀을 뜯어먹거나 하지 못하도록 한다. 매일 오후에 훈련을 시키면 밤까지 계속하고, 또한 밤에 훈련을 시키면 새벽까지 계속한다. 그 후 목장에 풀어둔다. 이와 같이 하여 3~5일, 혹은 8~9일이 지나면 말의 지방은 단단해져서 등에 뭉치게 된다. 배는 작고 단단해지며, 엉덩이는 크고 팽팽해진다. 이렇게 되면 힘을 다해 달려도 숨이 차는 일이 없게 된다. 7~8일 동안 전쟁을 치르게 돼서 물이나 풀이 부족해지는 일이 있어도 힘이 다하는 일이 없게 된다.
여기에서 소개한 것은 극히 일부일 뿐이지만 당시 몽골인들의 생활에 대한 이 책의 묘사는 꽤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출처 : 竺沙雅章,『アジアの歴史と文化』7, 森川哲雄,「明代のモンゴル」
역자 : 고려대학교 사학과 동양사전공 박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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