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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옛날 중국의 지명을 다룰 때 주의해야 할 점

by Mr. Trollope 2015. 6. 25.

옛날 중국의 지명을 다룰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는, 문인들이 사용하는 지명에서 종종 옛날이름古名이나 별명別名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행정구획이나 지방관직의 명칭에서도 종종 옛 이름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것은 시문詩文이나 편지와 같은 개인적인 문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공문서에 기록되는 적관籍貫이나 행정문서題書에서도 발견되는 현상이다. 당시 지명이 아니라 옛 지명을 사용하는 경우를 보자. 예를 들어 남경南京은 금릉金陵이라고 하며, 양주揚州는 광릉廣陵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금릉金陵은 진秦 이전 시기의 명칭이며 광릉廣陵은 당唐 이전 시기에 사용한 이름이다. 송宋/원元 이후 이러한 이름은 이미 사라지고 다시는 쓰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이후에도 문인들이 이 두 이름을 쓰는 경우를 너무나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지명으로 별명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테면 천주泉州는 온릉溫陵이라고 부르고 무석無錫은 양계梁溪라고 부르며, 남경南京을 백하白下라고도 하는데 사실 천주泉州, 무석無錫, 남경南京 등의 도시가, 중국의 전체 역사를 통틀어 온릉, 양계, 백하란 이름으로 된 행정기관이 설치된 경우가 없으며, 순전히 문인들이 품격와 아취를 높이기 위해 사용한 것뿐이다.


심지어 행정구획과 지방관의 관직명에서도 옛 이름을 사용한 경우도 있다. 이를 테면 송宋 이후의 시기에 군郡이라는 행정 단위가 존재하지 않는데도 송宋, 원元, 명明, 청清의 문인들의 글 속에서 자주 군郡이라는 단위와 태수太守와 같은 관직명이 등장한다. 사실 그 사람들이 군郡이라고 부르는 것은 주州 또는 부府이며 정식으로 사용되는 부府/주州/현縣의 이름 대신에 군郡의 이름 또는 별명別名을 사용한 것이다. 이를테면 가태嘉泰《회계지會稽志》는 실제로 소흥부지紹興府志이다. 회계會稽는 회계군郡에서 따온 것이다. 소희紹熙《운간지雲間志》는 사실 화정현지華亭縣志(지금의 송강松江)이고, 운간雲間은 화정현의 별명이다.


이러한 관습은 청조清朝이래 상당수 사라졌지만 이른바 고급진 사대부들은 이렇게 부르는 방식을 고집하고 잘 바꾸지 않으려 했다. 문인들이 시문詩文과 서찰書札 속에서 옛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고서를 읽거나 옛 문장을 읽을 때 어떤 지명이나 지방의 관직명, 행정구역의 명칭을 당시에 실제 사용되었던 지역명이나 관직명으로 인식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두번째는 같은 지역명칭, 같은 지방관명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시대에 따라 그 범위에 차이가 있거나, 혹은 아예 위치가 다른 경우다. 한대漢代에 1개의 주州는 지금의 2-3개 성省에 상당하는 크기지만 원元/명明/청清 시기의 주州는 지금의 1개 현縣 정도의 크기에 불과하다. 때문에 당대唐代의 소주蘇州의 관할 구역은 현재 강소성 소주시蘇州市와 그 부속현,+ 상해시上海市와 (숭명崇明 제외), + 절강浙江의 가흥시嘉興市와 그 부속현을 포함하는 넓이에 해당하는데, 지금의 소주蘇州와 비교하면 몇 배나 큰 것이다. 이것은 행정구역의 명칭이 같지만 그 크기에 차이가 있는 경우이다.


또한 위진남북조 시기의 양주揚州는 중심지가 지금의 남경시南京市에 있었는데 수隋 이후에 지금의 양주시揚州市로 옮겼다. 이외에도 한漢의 윤대輪台는 지금의 신강新疆 남부의 윤대현輪台縣 부근에 위치했지만 당시唐詩 속에 자주 출몰하는 윤대輪台는 절대 당唐 시기의 윤대輪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신강 북부의 우루무치烏魯木齊 부근을 가리킨다. 이것은 지역명이 같기는 하지만 위치가 다른 경우다.


명대明代의 포정사布政使는 1개 성省의 최고 행정장관이었지만, 청대清代에 이르게 되면 성省의 최고 관직은 총독總督 또는 순무巡撫였고 포정사布政司는 총독이나 순무의 하급관직에 불과했다. 이것은 똑같은 관직명이기는 하지만 직권에 변동이 생긴 경우이다.


당唐의 절도사節度使는 여러 개의 주州를 장악한 군사 방면의 최고관직이지만, 송대에 나오는 절도사節度使는 무관武官에게 붙여주는 일종의 칭호, 또는 명예직에 불과하며 실제 주둔하고 있는 지역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간혹 남송南宋의 명장 악비嶽飛가 “청원군절도사清遠軍節度使”의 직책을 받았고 청원군清遠軍이 지금의 광서廣西 묘족자치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악비嶽飛가 묘족자치구 지역에서 지방관을 역임했다고 말하는 얼빠진 사람도 있다. 이것은 지방행정제도의 변천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실수다. 사실 『송사宋史』를 보면 분명히 악비嶽飛가 당시 악주鄂州(지금의 무창武昌)에 주둔하고 있었으며 그의 관직명은 호북로湖北路 형양체치사荊襄制置使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그 먼 광서 묘족자치구까지 가서 장관 노릇을 할 수 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