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台想昭明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라는 사람들의 추한 민낯

by Mr. Trollope 2015. 2. 10.

지난해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세월호 사건이 있었고 통진당 해산이 있었으며 조현아 땅콩회항 사건이 있었다. 이 모든 사건을 관통하는 하나의 줄기가 있다면 그건 사회 지도층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의 천박함이다. 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돈 이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이 미개하다고 주장하지만 누구보다 미개한 것이 그들이다.


주장을 들어보자. 그들이 내세우는 원칙은 자유민주주의란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통진당 해산 결정 판결문에 따르면) 우리 앞에 북한이라는 적이 있기 때문에 잠시 우리의 자유와 민주를 제한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원칙이란건 어떤 상황에서도 훼손될 수 없고 양보할 수 없는 최상의 가치, 기본적인 원칙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최상의 가치는 무엇일까. 우리에게 합의된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헌법에 있다. 헌법이 말하는 첫번째 원칙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란 것이다. 저들이 하는 말과 같은 것이다. 저들이 하는 말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이 양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원칙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번 들어보자. 북한과 싸우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를 잠시 제쳐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가 북한과 싸우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가 아닌 그들이 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민주공화국이 때문이다. 우리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면, 자유민주주의를 원칙으로 할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두 팔을 벌려 북한의 김씨왕조를 맞이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원칙을 지키고 있기 대문에 북한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저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자유민주주의란 것은 북한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북한과 싸우는 것인데 북한과 싸우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를 버릴 수 있다면 이건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나는 몹시 혼란스럽다.


세월호 사건을 보자. 이것은 지극히 천박한 양태의 집합이며 현재 대한민국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겠다. 이익을 최대로 얻을 수 있다면 어떠한 것도 포기할 수 있다는 정부와 회사. 그리고 평시에는 법과 질서를 외치지만 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먼저 내빼는 최고지도자의 모습이 세월호에 함께 있었다. 세월호 사건이 터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에서 지하철 사고가 하나 터졌다. 재밌는 것은 이 때 차장은 차 안에 머무르도록 지시하였음에도 사람들이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와 무사히 대피했다는 점이다. 만약 그들이 차장의 멍령에 복종하여 어둠 속에 남았더라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그것이 궁금하다. 나는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다. 다만 이것이 세월호 사건과 비교했을때 그 의미가 너무 씁쓸하다. 세월호 안에 남은 사람들은 선장의 멍령을 지켰기 때문에 배 안에 머물러 있었고 목숨을 잃었다. 지하철에서는 차장의 멍령을 무시하고 밖으로 나왔기 때문에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다. 법을 지키면 목숨을 잃고 법을 어기면 살아남을 수 있다. 과연 이것이 2014년의 우리가 후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세지란 말인가?


법이란건 통치자를 구속하기 위한 것이지 피통치자를 다스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법치주의란 (사람들로 하여금) 법에 따라 움직이도록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쥔 자들이) 법에 규정된 방식이 아니면 통치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오랫동안 법은 통치의 도구라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그렇지만은 않았다. 법치가 아닌 법치주의도 있다. 나는 16세기의 중국에서 이러한 법치주의가 어느정도 작동했다고 믿는다. 우습게도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웃지 않을 수가 없다.


법치를 부르짖고 법치주의를 가장하지만 그들은 법에 구속되지 않는다. 법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법을 어기는 것이야말로 그들이다. 그들은 법 위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호의 선장은 먼저 배를 빠져나갔던 것이다. 이승만은 6.25 전쟁이 터졌을 때 북괴의 손아귀에 서울을 버려두고 누구보다도 먼저 달아났다.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백성을 버렸듯이. 그들 스스로가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들의 법은 통치의 자격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미개하기 때문에 국민은 야단스럽게 니즈를 주장할 자격이 없다고 통치받아야 한다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야말로 통치할 자격이 없다.


정니즈는 대한민국의 국민이 미개하다고 말했다. 가끔은 그의 말에 동의하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느낀다. 어쩌면 국민이 미개하기 때문에 그렇게 똑똑한 철학자가 대한민국을 통치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에게 통치할 권리를 주고 그들에게 우리를 이끌어줄 것을 요청해야 한다면, 미개한 국민이 주는 권력조차 미개할 것이고, 권력이 부여한 그들의 통치 또한 미개할 것이다. 만약 헌법으로부터 나오는 권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헌법의 권력이 국민의 미개함으로부터 나온다는 것도 인정해야만 한다. 하지만 국민이 미개한 반면 그들의 통치는 미개하지 않다고 주장하려면, 통치의 자격을 잃은 법이 아닌 통치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려면, 그들이 받아 챙기려는 자격이 헌법이 아닌 다른 곳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주장해야만 한다.


만약 헌법이 주는 권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헌법에 따라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래서 헌법의 제1원칙도 인정할 수 없다면,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원칙은 무엇일까? 나는 한동안 몹시도 곤혹스러웠다. 곰곰히 생각해본 끝에 답을 얻었다. 그것은 그냥 "잘먹고 잘사는 것"이다. 그제서야 모든 것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은 수정되어야 했다. 대한민국은 잘먹고 잘살고 싶은 사람들의 공화국이다 로 말이다. 이제 모든 것이 제대로 아귀가 맞아떨어지기 시작한다. 잘먹고 잘살고 싶은 사람들은 잘먹고 잘살게 해주는 사람들의 통치를 받아들여야 옳다. 잘먹고 잘사는 것이 제1원칙이라면 북한이 우리의 잘먹고 잘사는 삶을 위협할 때 자유민주주의를 잠시 접어두는 것도 옳은 것이다. 선박에 관련한 규정을 뜯어 고치고 무리해서라도 배를 운행하는 것도 타당한 결정인 것이다. 활주로를 달리는 비행기를 돌리라고 했던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조현아는 석방되어야 한다. 비행기에 탄 다른 사람들을 잘먹고 잘살게 해주는 것이 그녀이기 때문이다. 매값을 주고 사람을 야구방망이로 두들겨 패는 것도 웃으면서 이애할 수 있다. 누구 덕분에 잘먹고 잘사는데 그것을 불평하겠는가? 수십억을 횡령하고 경제사범으로 구속된 사람도 풀어주자. 그가 풀려나야 우리 모두가 잘먹고 잘살 수 있게 될 것이니까. 


슬프다.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실은 잘먹고 잘살 수만 있다면 어떤 것도 상관없다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주장이라면, 천박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아니다. 그렇게 하자. 그래도 아무 문제 없겠지. 그럼 지금 대한민국이 보여주는 이 미친 짓꺼리가 최소한 이해는 갈 게 아닌가.   










   

 

'台想昭明' 카테고리의 다른 글

三十岁的女人 / 野草 (중국판 복면가왕 버전)  (1) 2015.09.11
三十岁的女人 / 赵雷  (0) 2015.09.06
가만히 있으라 (3)  (0) 2014.06.03
가만히 있으라 (2)  (0) 2014.05.29
가만히 있으라 (1)  (0) 2014.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