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台想昭明

저메추의 한국

by Mr. Trollope 2022. 3. 26.

저메추. 저녁 메뉴 추천의 줄임말이다. 저녁 메뉴 추천받는다 또는 저녁 메뉴 추천한다는 식으로 사용한다.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때부터 무척 재미있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한 단어 속에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이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메추가 가능하다는 것은 저녁 메뉴를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누군가의 존재를 가정한다. 이 때의 저녁은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식사가 아닌 식사를 말하며, 또한 수 시간 내에 저녁식사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은 이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1인 가구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할 수 있다. 또한 메뉴에 구애받지 않고 저녁식사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단시간 내에 재료를 준비하고 조리할 수 있는 환경을 의미한다. 이것은 배달음식 또는 외식 또는 슈퍼마켓과 같은 환경을 의미한다. 그러니 이 단어가 신기할 수 밖에. 

 

어느새 저녁식사란 개념이 흐릿한 사람이 되었지만, 내 기억에, 대개 저녁 식사는 하루 중 가장 의미가 있는 식사 또는 의미 있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식사를 의미했다. 그 누군가란 대개 가족이었으며 하루 중에서 저녁만큼은 가족과 함께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많았다. 또는 일로 만난 사람 중에서 중요한 대화를 한다거나, 또는 친분을 강화하기 위해서 만나는 경우, 저녁이란 그런 의미가 있다. 그것이 누군가의 추천에 의해서 쉽게 결정될 수 있고, 또 본인의 기분이 내키는 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1인가구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지금, 따라서 현대적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가 없다.

 

지금, 어느덧 늙은 머리로 언뜻언뜻 기억나는 일이지만, 어렸을 때 외식은 한달에 한번 정도 가족이 함께 나가서 – 대개는 경양식이라는 이름의 돈까스 같은 것을 – 먹고 오는 것이었다. 이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 전까지 식사라는 것은 대개 집과 결합된 행위였다. 음식을 준비하고 차리는 행동은 음식을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는 보험과도 같다. 동시에 안전한 울타리에서 안전이 확보된 음식을 함께 나눈다는 것은 가족성원과 타인 사이의 경계를 확인하는 의식과도 같다. 매일매일 치러지는 이러한 의식은 가족내에 의견을 교환하고 유대감을 확인하는 기능을 했다. 

 

때문에 집에서 하는 식사는 그만큼 중요하다. 그 전까지 집을 벗어난 형태의 식사는, 대개 격식이 떨어지거나, 간소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그런 행위였다. 고대 중국에도 길을 따라 숙박업소가 존재했고 고대 로마에서도 비슷한 시설이 있었다고 들었다. 당나라 때는 식사와 숙박을 제공하는 것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위한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도 존재했다. 과거에 여행이란, 목적지에 누군가 아는 사람이 존재하고, 그 사람의 집에 숙박하고 음식을 얻어 먹는 그런 것이었다. 개인적인 친분이 없어도 또는 안면이 없는 사람에게 잘 수 있는 장소와 음식을 제공한다는 것은 그 전까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시간을 조금 더 뒤로 내리면 근세 중국에서 제작된 풍속화를 보면 길거리에서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행상인이 존재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이때의 음식은 간단하게 그 자리에 서서 먹을 수 있는 형태이거나 또는 집에 가져가서 먹을 수 있는 그런 것이었고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듣기에 오늘날과 같이, 외부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은 19세기 중반의 일이라고 한다. 몇몇 호텔에서 음식을 제공하고, 정식 가격이 적힌 메뉴판을 제공했고 남성 뿐만 아니라 여성까지도 여기에서 식사를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지금은 소개팅을 할 때나 이런 곳을 찾는다(고 카더라). 영국에서 축구란 것이 만들어져 응애응애하기 시작할 무렵 영국에서는 퍼블릭하우스 라는 것이 등장해 커피하우스에서 쫓겨난 노동자를 위해 식사와 커피(차)를 제공했다. 재밌게도 오늘날 중국에서는 (대륙식) 커피숍과 (영국식) 커피하우스 두 가지 전통에 기원을 둔 서로 다른 형태의 카페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음식배달은 더욱 현대적이다. (너무 현대적인건 내 분야를 훨씬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겠다.) 조선시대에는 해장국을 배달해서 효종갱이라는 말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런걸 배달음식의 시초라고 부르는건 머쓱한 일이다. 어쨌든 음식이 집 안에 머물러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음식의 재료도 멀리 존재하지 않았다. 고대 중국과 로마에서는 수천km 떨어진 곳에서 생산된 식량과 소금을 운반하여 대도시에 공급하는 형태가 이미 존재했다. 그러나 이것을 보편적인 형태라고 부를 수는 없다. 대개의 경우 도시는 근처에 곡창지대를 끼고 발달했는데 음식과 관련된 공급망은 장거리로 형성되는 일이 드물었다는 뜻이다. 고대 도시의 인구가 100만을 넘기는 것이 거의 보기 힘들었다는 것 역시 비슷한 현실을 반영한다. 반면 오늘날에는 천만명을 넘는 도시권역이 드물지 않다. 

 

남성이 재료를 준비하고 여성이 요리를 준비하는 그런 사회가 과거에는 일상이었다면, 오늘날에는 더 이상 가능한 현실이 아닌 것 같다. 오늘날 모든 음식과 식사 행위에서는 젠더라는 것이 의미가 없다. 학부 시절에는 남자 둘이 카페에 가서 커피를 시키는 일이 힘든 일이라고 우스개 소리로 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것도 옛말이 되었다. 음식과 식사는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에서 벗어났고 더 이상 이것은 개인적인 의미를 갖지 않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오늘날에는 여성에게 음식을 준비하라고 얘기했다가는 비웃음을 당하기 딱 좋다. 대신 오늘날에는 다른 사람에게 추천을 받고 주문을 한다. 물론 이것도 전부는 아니다. 대략 1/4 정도라고 한다. 대한민국 전체 가구 형태 중에서 1인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충 그 정도라고 하니까. 생각해보니 나도 여기에 기여한 바가 있다.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