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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칸트 ① : 도시의 역사 Samarqand / Самарка́нд 사마르칸트에 도시 문명이 시작된 것은 적어도 기원전 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초기의 역사는 거의 베일에 가려져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기원전 329년에 이곳에 도착했을 때 사마르칸트는 소그디아나의 중심지였으며 부유했고 둘레가 13km에 달하는 요새로 둘러싸여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별 저항을 받지 않고 이 도시를 차지한 뒤 이렇게 말했다. “이 도시의 부유함에 대해 내가 들었던 것은 모두 사실이었다. 오히려 그것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다.” 고고학 발굴은 이 지역이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들에 의해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쿠샨 조의 권력이 이곳까지 미쳤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기원후 1세기에 사마르칸트는 황폐해져 있었다. 그러나 3세기 이후부.. 2015. 2. 20.
안내글 앞으로 이 카테고리에 올라올 모든 글은 2007년 사학과의 학술모임 녹두사학회의 이름으로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하면서 준비하고 정리한 자료집에서 나온 것이다. 나를 포함한 5명의 학부생은 모두 2주일 동안 타쉬켄트,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바 등의 주요 도시를 돌아보았다. 당시 우즈베키스탄 여행 자료집을 준비하는 과정에도 참여하였고 여행에도 참가하였으나, 자료집의 완성에 기여한 나의 공헌이라고 한다면 아마 5명 중 마지막 자리에나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여행 과정 중에 본인이 사진으로 남긴 것도 부족하여 지금까지는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망설였다. 때문에 오랫동안 우즈베키스탄에 관한 글을 올리지 않았다. 구정을 맞이하여 시골에서 짐을 정리하던 중 과거에 만들었던 자료집을 발견했.. 2015. 2. 20.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라는 사람들의 추한 민낯 지난해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세월호 사건이 있었고 통진당 해산이 있었으며 조현아 땅콩회항 사건이 있었다. 이 모든 사건을 관통하는 하나의 줄기가 있다면 그건 사회 지도층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의 천박함이다. 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돈 이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이 미개하다고 주장하지만 누구보다 미개한 것이 그들이다. 주장을 들어보자. 그들이 내세우는 원칙은 자유민주주의란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통진당 해산 결정 판결문에 따르면) 우리 앞에 북한이라는 적이 있기 때문에 잠시 우리의 자유와 민주를 제한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원칙이란건 어떤 상황에서도 훼손될 수 없고 양보할 수 없는 최상의 가치, 기본적인 원칙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있어.. 2015. 2. 10.
Constructing a National Capital in Nanjing, 1927-1937 (2) Joseph W. Esherick, ed., Remaking the Chinese City : Modernity and National Identity, 1900-1950, Honolulu, Hawai'i. :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pp. 139-157 Chapter 9. Charles D. Musgrove, "Building a Dream : Constructing a National Capital in Nanjing, 1927-1937" 입찰의 승리자와 수도계획Contest "Winners" and the Capital City Plan 9개의 회사가 설계 경쟁에 참여하였다. 그 중 4개안의 세부사항과 도면이 1929년 11월자 신문에 공개되었다. 각각의 디자.. 2015. 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