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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24

명13릉 만력제의 무자비(無字碑)에 관한 오해 북경에서 서북쪽 창평현에 천수산(天壽山)이 있고, 이 산속에는 명 왕조의 13명의 황제의 능이 모여 있는데 이곳을 명13릉(明十三陵)이라고 부른다. 명13릉에는 태조 홍무제와 혜제 건문제를 제외하면 모두 이곳에 묻혀, 모두 13명의 황제와, 23명의 황후, 2명의 태자, 30여명의 비빈, 1명의 환관이 있으며, 그중에서도 정릉은 13릉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화려해서, 명13릉의 대표 얼굴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또한 명13릉의 대표인 정릉에서 다시 대표적인 얼굴이라고 한다면 만력제의 신공성덕비인데 이것이 그 유명한 무자비(無字碑)이다. 무자비(無字碑)는 말 그대로 아무런 글자가 새겨져 있지 않은 비석이라는 뜻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만력제 자신이 생각하기에 공적이 너무 크고 많아서 이곳에 다 .. 2013. 1. 11.
한족 최후의 왕조 남명南明(1644-1661) 1644년 3월 19일 북경이 점령되고 숭정제가 자살했다는 소식은 약 한달 가량이 지난 뒤 4월 중순 즈음에야 남경에 도착했다. 숭정제의 뒤를 이어 황제를 세워야 마땅한 첫번째 적임자인 황태자는 이자성의 손에 넘어갔기 때문에 남경에 남아 있는 신하들은 다음 황제의 재목을 종실 중에서 물색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남경은 명대의 2번째 수도였기 때문에 비교적 완전한 정부기구가 남아 있었으며, 또한 강남은 이미 천하에서, 아니 당시 전세계를 통틀어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청나라에 대항해 제대로 된 왕조를 건설하기에 어려운 점 역시 존재했다. 첫째, 정권의 구성이 복잡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의사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명은 먼저 북경에서 피난을 온 관료, 기존에 남경에 배치되었던 관료, 강.. 2013. 1. 11.
커피, 근대 중국의 광고와 우유 기숙사에 올라가는 길에 있는 어느 카페의 광고. 예전부터 뭐라도 써야겠다 하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쓰게 된다. 커피에 대한 이 뻔뻔한 찬사는 옛날 박상수 선생님의 수업시간에 읽었던 글을 떠올리게 했다. 그것은 중국의 근대에 우유가 도입되는 시도와 그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 그리고 극복하는 내용이었다. Susan Glosser의 이 연구는 家庭星期의 광고가 어떻게 우유의 소비를 촉진시켰고 그래서 우유가 어떻게 중국인의 생활 속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가의 과정을 보여준다. 우유를 마시는 것은 근대의 대다수 중국인에게는 새롭게 습득되어야 하는 습관이었다. 그래서 가족의 일상적인 식료품의 하나로 우유를 포함하는 결정을 내리도록 주부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지식과 혁신을 부여해야 했다. 여성에게 .. 2012. 10. 21.
독도영유권 문답 - 프랑스 국제법 학자와의 대화 (1996.06.14) 독도문답 전문. 원문은 내일신문에 실린 것인데 참 좋다. 독도영유권 문답 - 프랑스 국제법 학자와의 대화 (1996.06.14) 최근에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 문제에 대해서 꽤나 강경하게 나오고 있어 걱정이다. 이건 아무리 봐도 우리에게 불리한 게임인데 그 중에서 핵심은 이 부분이다.-----------------------------------------------------------------------------------------Mormanne : 일본은 독도분쟁을 재판으로 해결하자고 하는데 비해, 한국은 이를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분쟁을 국제재판에 의해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일본의 입장을 한국은 왜 거부하나? 단적으로 한국이 법적으로는 자신이 없다는 증거가 아닌가? 홍 : “일본은 재판.. 2012. 8.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