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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24

옛날 중국의 지명을 다룰 때 주의해야 할 점 옛날 중국의 지명을 다룰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는, 문인들이 사용하는 지명에서 종종 옛날이름古名이나 별명別名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행정구획이나 지방관직의 명칭에서도 종종 옛 이름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것은 시문詩文이나 편지와 같은 개인적인 문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공문서에 기록되는 적관籍貫이나 행정문서題書에서도 발견되는 현상이다. 당시 지명이 아니라 옛 지명을 사용하는 경우를 보자. 예를 들어 남경南京은 금릉金陵이라고 하며, 양주揚州는 광릉廣陵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금릉金陵은 진秦 이전 시기의 명칭이며 광릉廣陵은 당唐 이전 시기에 사용한 이름이다. 송宋/원元 이후 이러한 이름은 이미 사라지고 다시는 쓰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이후에도 문인들이 이 두 이름을 쓰는 경우.. 2015. 6. 25.
16세기 몽골의 풍습 16세기 말 몽골인의 풍습을 기록한 『북로풍속(北虜風俗)』(일명 『이속기(夷俗記)』라는 책이 있다. 저자는 선부대동총독(宣府大同總督) 및 병부상서를 역임한 숙대향(肅大享)이고 1594년에 이 책을 저술했다. 그는 수십년 동안 명의 북쪽 변방 방위 및 몽골의 지배자와의 교섭 임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몽골의 사정에 정통하고 있던 사람 중 한명이었다. 책의 내용은 결혼, 출산, 전쟁, 시장 등 20개 항목에 걸쳐 있는데 그 중 흥미로운 내용 몇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결혼남녀의 결혼은 쌍방의 집안이 결정한다. 예물은 소나 말 등의 가축을 선물하고 또한 직물 등도 선물한다. 그 수의 많고 적음은 그 집안의 빈부에 따른다. 혼약이 성립되면 남자는 여자의 집으로 가서 친구들을 초대하여 술자리를 열고 천지에.. 2014. 2. 5.
왕푸징(王府井) : 명대 북경 10왕부의 역사 북경의 유명한 거리, 왕푸징(王府井)은 우리나라 서울의 명동쯤에 해당하는 쇼핑 타운으로 이곳에는 동양 최대의 쇼핑몰인 동방신천지를 비롯하여 수많은 백화점이 밀집해 있다. 비록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원대 이전까지 이곳은 단순히 조그마한 촌락에 불과했고 원대에는 정자가(丁字街)란 이름으로 불리었으나 특별한 의미는 없다. 이 이름은 단순히 갑을병정 순으로 붙인 것으로, 고대 도시에서 지명은 절이나 관청, 학교, 탑의 이름을 따서 짓던가 하다못해 근처에 있는 다리 같은 건축물의 이름을 따서라도 이름을 지었던 것을 생각하면 당시 사람들에게 이곳이 별 의미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이곳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명대이다. 명 초 영락제에 의해 자금성이 조성되고 그 옆, 바로 이곳에 10왕부가 건설된 것이다. 그 뒤 .. 2013. 11. 16.
명나라와 원나라의 전쟁 1368-1388 (4) 원의 멸망 이후. 요동전역 1368년 7월 28일 원의 마지막 황제 토곤 테무르는 북진하는 명의 군대를 저지하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대도(북경)를 출발, 상도로 피신했다. 이로써 원이 멸망하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몽골에서는 여전히 자신들이 여전히 강력한 대원제국의 연속이라고 생각하였고 중원에서 물러난 것은 잠시 제국의 일부를 빼앗긴 것에 불과하며 자신들이 곧 되찾을 것을 공언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원이 멸망한 것으로 간주한다. 또한 고려에서도 이 이후의 몽골을 북원이라고 불렀는데 1369년 8월이 되면 북원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다. 고려가 북원이라고 부른 것은 상도에 위치한 토곤 테무르가 중원지배를 상실하였고 그들을 정통성이 결여한 정권으로 인식하였다는 뜻이다. 명에서는 그들을 고원故元.. 2013.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