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109 명13릉 만력제의 무자비(無字碑)에 관한 오해 북경에서 서북쪽 창평현에 천수산(天壽山)이 있고, 이 산속에는 명 왕조의 13명의 황제의 능이 모여 있는데 이곳을 명13릉(明十三陵)이라고 부른다. 명13릉에는 태조 홍무제와 혜제 건문제를 제외하면 모두 이곳에 묻혀, 모두 13명의 황제와, 23명의 황후, 2명의 태자, 30여명의 비빈, 1명의 환관이 있으며, 그중에서도 정릉은 13릉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화려해서, 명13릉의 대표 얼굴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또한 명13릉의 대표인 정릉에서 다시 대표적인 얼굴이라고 한다면 만력제의 신공성덕비인데 이것이 그 유명한 무자비(無字碑)이다. 무자비(無字碑)는 말 그대로 아무런 글자가 새겨져 있지 않은 비석이라는 뜻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만력제 자신이 생각하기에 공적이 너무 크고 많아서 이곳에 다 .. 2013. 1. 11. 한족 최후의 왕조 남명南明(1644-1661) 1644년 3월 19일 북경이 점령되고 숭정제가 자살했다는 소식은 약 한달 가량이 지난 뒤 4월 중순 즈음에야 남경에 도착했다. 숭정제의 뒤를 이어 황제를 세워야 마땅한 첫번째 적임자인 황태자는 이자성의 손에 넘어갔기 때문에 남경에 남아 있는 신하들은 다음 황제의 재목을 종실 중에서 물색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남경은 명대의 2번째 수도였기 때문에 비교적 완전한 정부기구가 남아 있었으며, 또한 강남은 이미 천하에서, 아니 당시 전세계를 통틀어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청나라에 대항해 제대로 된 왕조를 건설하기에 어려운 점 역시 존재했다. 첫째, 정권의 구성이 복잡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의사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명은 먼저 북경에서 피난을 온 관료, 기존에 남경에 배치되었던 관료, 강.. 2013. 1. 11. 똘레랑스냐 앵똘레랑스냐의 문제에 관해 굳이 어울리지도 않는 프랑스어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홍- 작가를 통해 소개된 이 용어를 살리고 싶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이 용어를 쓸 이유는 없다. 지난번 대선이 끝난뒤 선배와 대판 싸운 일이 있었다. 주변에서 그랬다. - 왜 그랬냐 어차피 정치 얘기인데 그걸 갖고 그렇게 싸울 필요가 있었냐 - 너 의견이 다르고 그 의견이 다른건데 그냥 서로의 의견이 다르다는 것만 알고 넘어가면 되는거 아니냐. -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끼리 왜 굳이 말을 섞으려고 하느냐. 내가 믿었던 것은.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토론을 멈춰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평소에 고파스를 비롯한 여러 우익 경향의 사이트를 들락날락 거리고. 계속해서 부딪치고, 우익 경향의 사람들과 말싸움을 계속한 이유는 오직 그 때문이었다... 2013. 1. 9. 왜 코제트(Cosette)가 레미제라블의 히로인일까 1862년 원작 초판본에 실린 에밀 바야르(Émile Bayard)의 판각화 중, 헐벗은 어린 코제트가 자기 몸의 몇배는 되는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고 있는 이 그림은 레 미제라블을 대표하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의 주인공은 장발장이고, 작품이 미리엘 주교-장발장-자베르로 대변되는 구도를 갖고 있다다고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레 미제라블의 얼굴은 언제나 코제트였다. 코제트는 어떠한 인물인가. 코제트가 한 것이 대체 뭐가 있다고. 학대받는 어린이에서 유순한 딸로, 아름다운 여성으로서, 테나르디에에게서 장발장으로 장발장에서 마리우스로 그녀의 소유가 바뀌었을 뿐. 그녀의 운명은 줄곧 다른 사람의 손에서 결정되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과연 코제트는 가여운 어린아이라서, 비참한 사람들이란 .. 2013. 1. 1. 이전 1 ··· 18 19 20 21 22 23 24 ··· 28 다음